늙은 정치인과 낡은 정치판

2024년 2월 21일, explained

문제는 나이가 아니다. 낡은 정치로 채워진 선택지가 핵심이다.

조 바이든이 X에 올린 '다크 브랜든(Dark Brandon) 밈. 바이든 캠프는 젊은 이미지를 강조해 Z세대 유권자를 끌어들이려 한다. @JoeBi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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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 의혹을 조사한 특검 보고서가 공개됐다. 바이든이 부통령 재직 시절, 고의로 기밀문서를 유출했으나 형사 고발은 타당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기소까지는 필요치 않다고 판단한 배경에 또 다른 요인이 있다. 바로 바이든 대통령의 기억력이다. 특검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재직 기간, 장남인 보 바이든의 사망 연도 등을 떠올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자신을 “기억력이 나쁜 노인”으로 표현한 데 반박했다.

WHY NOW

늙은 정치인들의 얼굴에서 발견해야 할 것은 그들의 주름도, 말실수도 아닌 낡은 정치 시스템 그 자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젊은 정치인들의 파편적인 등장이 아니다. 경력과 나이를 능력과 동일시했던 낡은 정치와의 결별이다. 유권자들은 낡은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선택지에는 4년 전의 얼굴만 존재한다. 무엇이 그 선택지를 만들었는지를 들여다볼 때다.

1942년과 1946년

올해로 바이든 대통령은 81세, 트럼프 전 대통령은 77세다. 전 세계 정부 수뇌의 평균 연령이 62세라는 걸 고려한다면, 둘 다 나이가 적지 않다. 퓨 리서치 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187명의 지도자 중 단 여덟 명만이 바이든보다 나이가 많다. 이 둘이 올해 11월 있을 미국 대선에서 후보로 맞설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86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82세에 임기가 종료된다. 누가 당선되든 역대 최고령이다.

우려

고등 인지 사고에 관여하는 대부분의 뇌 부위는 60~70세부터 시작해 사망할 때까지 노화 과정을 겪게 된다. 해마 영역이 축소되고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늦어질 수 있으며 도파민,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 역시 감소할 수 있다. 과학적인 이유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이번 특검 보고서처럼 사람들은 이미 ‘늙은 정치인’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을 문재인 대통령으로 언급하거나, 시진핑 중국 주석을 덩샤오핑과 혼동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세를 다니며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를 조롱하는 모션을 취했지만, 최근에는 힐러리 클린턴을 오바마 전 대통령과 혼동하는 등 말실수를 하는 장면을 보였다.

공격과 리스크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81번째 생일날 주치의의 편지를 공개했다. 브루스 에런월드 박사는 여덟 문장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을 과시했으나 체중,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등의 주요 건강 지표가 적혀 있지 않아 지적을 받았다. 두 대통령의 고령 상황은 좋은 정치적 공격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대선 레이스에 나선 니키 헤일리는 트럼프와 바이든을 한 데 엮어 ‘심술쟁이 노인들’ 캠페인을 시작했다. 플로리다 주지사인 론 드샌티스는 2016년의 자유분방하고 빨랐던 트럼프와 지금의 트럼프를 비교하며 “이제는 그냥 다른 사람이 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나이만이 유일한 변화는 아니겠지만, 분명 속도감 있는 정치를 전개하는 트럼프에게도 노화는 큰 리스크다.

바람

그만큼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와 모닝 컨설트가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현재 정치 지도자의 나이가 문제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전체 응답자의 78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지도자의 나이에 따른 의회 임기 제한과 건강 검진 의무화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네 명 중 세 명은 의회 연령 제한 도입을 선호했고,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비슷한 정도의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들이 원하는 젊음의 이유는 명확했다. 기술과 시민권, 에너지, 환경 등 미래와 밀접한 이슈가 과거 사람들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것이 이유로 꼽힌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네 살이 더 많은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나이’가 더 큰 방해 요소다. ABC 방송사가 조사한 결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재선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86퍼센트에 달했다. 트럼프의 경우에는 62퍼센트였다.

변화는 가능할까

현실은 요원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절반이 꼽는 이상적인 대통령의 연령은 51~65세였다. 응답자 중 4분의 1은 50세 이하의 대통령 후보자를 선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바이든과 트럼프를 포함한 여덟 명의 대선 후보 중 다섯 명은 65세를 훨씬 넘었다. 의회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난다. 미국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베이비부머 세대가 66명, 78~95세를 이르는 침묵의 세대가 여덟 명이다. 중요한 요소는 선택의 창이 열려있느냐의 여부다. 공화당 여론 조사원인 위트 아이레스(Whit Ayres)는 “사람들은 80대에는 누구도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누구도 원치 않는 대결

인기 없는 후보 두 명이 서로를 당선시킬 수는 없다는 유일한 목적 아래에서 대결한다. 새로운 얼굴이 등장할 수 없는 정치는 조용히 늙거나, 낡아갈 뿐이다. 그래서일까. 미국 국민은 바이든도, 트럼프도 뽑고 싶지 않다. 미국인의 3분의 1만이 바이든 대통령을 호의적으로 보고 있으며 트럼프는 세 번 연속 공화당 후보로 압도적 지지를 받지만, 전반적인 지지율은 바이든보다 낮다. 유권자의 60퍼센트는 트럼프를 복귀시키고 싶지 않아 했고, 65퍼센트는 바이든의 재선을 원치 않았다. 늙은 후보에 대한 우려가 정치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낳는 상황이다.

소련의 노인 정치

붕괴 직전, 소련의 마지막 수십 년은 늙은 정치인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변화를 거부했다. 가장 어린 소련 지도자였던 54세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91년 12월 사임 연설에서 “새로운 체제가 작동하기 전에 낡은 체제가 무너졌고 사회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고 표현했다. 고르바초프의 젊은 얼굴은 낡고 늙은 시스템을 바꾸기에는 무력했다. 문제는 늙거나 어린 몇몇 정치인의 존재와 부재 자체가 아닌, 새로운 얼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능 부전에 있을지 모른다.

IT MATTERS

늙은 정치인에게는 젊은 정치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이 존재한다. 《뉴욕타임스》는 후보의 나이에 집착하는 것보다 그 후보가 정말로 이 일을 해낼 역량이 있는지를 따지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노화는 말실수와 주름처럼 표면으로밖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에 앞서 살펴야 할 것은 그 역량을 따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의 문제다.

나이 많은 국회의원들은 이미 정치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갖추고 있다. 인지도뿐 아니라 캠페인에서의 자금 조달력도 젊은 후보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캠페인에 쏟을 수 있는 돈, 나이로만 쌓을 수 있는 경력, 외부의 초빙으로만 만들어지는 새로운 얼굴이 가득한 정치판에서 우리는 정말로 나이와 경력 이외의 ‘역량’을 따질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역량을 판단할 수 없다는 난점이 지금 미국 대선의 선택지를 만들었을지 모른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교체지수를 적용하고 3선 이상 중진 의원에 대한 감산 페널티 등을 포함한 22대 총선 공천 룰을 내세웠다. 3선 이상 중진은 15퍼센트 감점되고 신인은 20퍼센트 가점된다.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다. 질문은 남았다. 신인을 많이 뽑는다고, 정치가 새로워질 수 있을까? 낡은 정치에 필요한 건 젊은 얼굴이 아니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서도 새로운 미래와 기준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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