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숨긴 마트

2024년 4월 26일, explained

AI 환각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술이 사람을 숨긴다.

2021년 3월 4일 영국 런던에 문을 연 Amazon Fresh 매장에서 고객들이 진열된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쇼핑객은 입장 시 스마트폰 앱으로 체크인하고 개별 상품을 스캔할 필요 없이 퇴장하면 자동으로 요금이 청구된다. 사진: Photo by Leon Neal/Getty Images
NOW THIS

아마존이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Amazon Go)를 공개했을 때 그것은 현실에 도래한 미래였다. 물건을 골라 그냥 매장 밖으로 나가면 자동으로 결재가 되는, 쇼핑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생성형 AI는커녕, 키오스크 비대면 결재도 일반화 하기 이전인 2016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무인 매장을 가능케 했던 것은 사람이었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천 명 넘는 인도인이 매장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상품의 라벨을 확인하고, 고객이 구매한 물건을 확인해 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WHY NOW

전 세계가 사람을 대체할 기술에 열광하고 있다. 사람의 몸을 대체할 로봇이, 사람의 뇌를 대체할 인공지능이 경제의 중심에 섰다. 멈춘 줄 알았던 성장을 다시금 밀어 올릴 구원자다. 나스닥이, 코스피가 출렁인다. 그러나 기술은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다. 인류의 삶은 대체되기엔 엄청나게 복잡하고 경이롭다, 아직은.

Just Walk Out Technology

계산대 앞에서 지루하게 줄을 선다. 앞 사람과 물건이 섞일까 신경을 곤두세운다. 막상 차례가 되면 직원의 빠른 손놀림에 맞춰 허둥지둥 물건을 다시 챙겨 담고 신용카드와 포인트 카드를 부랴부랴 꺼낸다. 아마존은 이 시간을 ‘비효율’인 동시에 고객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로 정의했다. 온라인의 쇼핑 경험을 혁신했던 아마존이다. 오프라인의 쇼핑 경험도 혁신하겠다고 선언했다.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무엇을 구입했는지, 얼마를 결재해야 할지는 아마존의 기술이 챙기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Just Walk Out Technology’다.

숨겨진 사람들

마법 같은 일이지만, 기술이다. 매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상품을 추적할 수 있는 센서 등을 이용해 누가 무엇을 가지고 나갔는지 인식하고 미리 등록해 둔 결제 수단을 통해 결재가 이루어지는 식이다. 그런데 구매 영수증을 받을 때까지 몇 시간씩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유가 드러났다. 자동화된 시스템만으로는 고객이 무엇을 얼마나 구매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특히, 편의점 수준이 아니라 마트 수준으로 확장한 아마존 프레시(Amazon Fresh)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결국, 사람이 확인했다. 인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찍힌 물건의 라벨을 원격으로 확인했다. 검수 과정이다. 이 과정에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도 인정했다. 근무자가 천명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말이다.

완전? 자율주행 택시

기술 뒤에 사람이 숨어 일하고 있었던 사례는 드물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인 택시를 운영했던 GM 크루즈도 비슷한 논란으로 입길에 오르내렸다. 완전 자율주행 기술로 운행되는 줄로만 알았던 크루즈가, 실은 인간의 원격 조작에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2023년 11월, 《뉴욕 타임스》는 차량 1대당 1.5명의 인력이 붙어야 했다고 보도했다. 도로를 4~8km 운행할 때마다 한 번씩 인간의 개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Mechanical Turk

전형적인 ‘매커니컬 투르크(Mechanical Turk)’의 사례들이다. 사람이 일한 결과를 기계의 작동 결과로 속이는 행태를 뜻한다. 어원은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트리아 궁정에 터키인의 모습을 한 인형이 등장했다. 이 인형은 자동으로 움직이며 기가 막히게 체스를 두었다. 많은 사람이 상대로 나섰다가 패배했다. 나폴레옹, 벤저민 프랭클린 등도 쓴맛을 본 장본인이다. 유럽 전역을 돌며 관객들을 매료시켰던 이 인형은, 로봇도 아니고 인공지능도 아니었다. 정교한 기계 속에 사람이 들어앉아 조종하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체스를 아주 잘 두는 사람이다.

Image Net

21세기에도 Mechanical Turk가 있다. 속임수나 사기는 아니다. 2005년도에 시작된 아마존의 서비스 얘기다. 요청자의 과제를 수행할 사람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으로, 간단한 데이터 검증 및 연구 수행부터 설문조사 참여까지 요즘 세상에 사람이 해야 하나 싶은 소소한 작업을 수행하면 소소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 이 플랫폼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2012년 시작된 ‘이미지 넷’ 프로젝트다. 5만여 명의 사람이 붙어서 사진 10억 장에 일일이 라벨을 달았다. 개인지,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쿠키인지 사람이 확인하고 입력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연구자들에게 무료로 공개되었고, 이제 우리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이미지를 인식해 추론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림자 노동

물론, 이러한 작업이 늘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21년 국제노동기구(ILO)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온라인 프리랜서 작업의 대부분이 남반구에서 수행되고 있다고 한다. 인도나 필리핀 등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가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넷 프로젝트와 유사한 이미지 라벨링 작업도 이에 포함된다. 이들은 소소하지 않은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생계가 걸렸기 때문이다. 때로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데이터에 노출되기도 한다. 대가는 소소하다. 4시간을 일해서 30센트를 버는 일도 있다.

기술의 진화 방법

기술 뒤에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사람을 숨긴다. 이유는 무엇일까.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은 신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체스를 잘 두는 자동인형이 신기하다. 볼거리가 되고 돈이 몰린다. 현대판으로 번역하자면 ‘투자’가 몰린다. 실제 관련이 있든 없든, 사업보고서에 AI가 있어야만 스타트업 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지경이다. 그러나 기술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은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기술에 아직 사람이 필요하다면 무엇에 어떻게 필요한지, 소비자가 알 수 있어야 한다.

IT MATTERS

아마존은 무인 매장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고객이 카트에 물건을 담는 과정에서 자동으로 결재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에 힘을 더 싣겠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인 계산대를 카트에 부착해 놓은 방식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카메라와 비싼 센서보다 훨씬 인간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고객의 쇼핑 과정에 기술을 자연스럽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물론, 아마존만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은 아니지만 말이다. 결국 혁신보다 해결이 먼저다. 기술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목적이다. 아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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