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만들 AI 시대

2024년 5월 8일, explained

애플다운 인공지능은 기술이 아닌 경험이다.

2023년 6월 5일,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열린 WWDC에서 팀 쿡 애플 CEO가 연설하고 있다. 사진: Justin Sullivan/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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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각 5월 7일, 애플이 아이패드의 신제품을 공개한다. 이번 아이패드 출시는 18개월 만이다. 애플 역사상 가장 긴 신제품 출시 공백기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도 쏠린다. 바로 AI다. 팀 쿡 CEO가 작년부터 AI와 관련한 계획을 밝히면서 기대가 모이는 상황이다.

WHY NOW

애플은 내달 열리는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WWDC)’에서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제품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팀 쿡은 애플이 “AI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우리가 좋은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애플의 AI 청사진이 본격적으로 제품화된다. 애플이 만들 AI 혁신은 어떤 모습이 될까?

에이작스

‘디인포메이션’의 보도에 따르면 애플이 하루 동안 인공지능에 투자하는 돈은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기본 모델(Foundational Models)’이라 불리는 대화형 AI 개발 부서는 애플의 음성 비서 ‘시리(Siri)’를 개선하기 위해 2018년에 고용된 AI 책임자인 존 지아난드레이(John Giannandrea)가 주도한다. 애플의 모든 인공지능 개발의 핵심에는 ‘에이작스(Ajax)’가 있다. 2000억 개 이상의 매개변수를 학습한 거대 언어 모델이다. 일부 엔지니어는 이 에이작스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AI 챗봇을 ‘애플GPT’라고 부른다.

시리

모두가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시대다. 이제는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중요한 건 인공지능을 어떻게,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가다. 애플의 자산은 바로 시리다. 연구원들은 ‘시리야’와 같은 깨우기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시리를 실행할 방법을 연구해 왔다. 기기가 중요한 소리와 그렇지 않은 소리를 직접 구분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어시스턴트와의 커뮤니케이션 경험을 고도화하기 위해 애플은 STEER(Semantic Turn Extension-Expansion Recognition) 기술을 개발 중이기도 하다. 해당 기술을 통해 시리는 불확실하거나 모호한 질문에도 정확히 답할 수 있다. 시리의 답변이 장황하지 않도록 만드는 연구 역시 진행 중이다.

온디바이스

시리를 잘 활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온디바이스다. 온디바이스는 휴대폰, 노트북과 같은 전자기기에 신경망 칩을 설치해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고도 생성형 AI를 구동할 수 있게끔 하는 기술이다.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전송하지 않기 때문에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할 수 있다. 빠르고 효율적이다.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이미 애플은 AI 시장에서 선구자 자리를 꿰차지 못했다. 삼성은 AI 스마트폰을 내놨고, MS는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지난 1월 시가 총액 1위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애플의 인공지능은 성능만으로 경쟁할 수 없다. 애플의 과제는 인공지능을 가장 애플답게, 애플스럽게 활용하는 것이다.

iOS

애플은 구글이나 MS, 오픈AI와는 달리 인공지능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2023 WWDC 기조연설에서도 애플은 ‘인공지능’이라는 단어 대신 ‘트랜스포머’와 ‘기계 학습’을 강조했다. 애플에 있어 중요한 건 인공지능 그 자체가 아닌 인공지능이 애플의 하드웨어, 생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핵심에는 iOS가 있다. 애플은 iOS17에서 애플 기기 내에서 온디바이스로 실행 가능한 다양한 AI 기능을 선보인 바 있다. 다가오는 iOS18 업데이트에서 인공지능은 더욱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애플의 자체 애플리케이션인 시리와 스포트라이트, 단축어, 애플 뮤직, 메시지, 건강, 키노트 등에 생성형 AI 기능이 탑재되면서다. 14억 명의 iOS 사용자를 이미 보유한 애플은 따로 인공지능을 사용하거나 배울 고객을 모으지 않아도 된다. 이미 iOS는 유능한 영업 사원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콘텐츠

모건스탠리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술 대중화의 가장 큰 수혜를 볼 기업은 구글도, 오픈AI도 아닌 애플이었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콘텐츠 서비스를 모두 갖추고 있다.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공지능 기능들이 서로 협업하는 생태계가 가능해진다. 건강 애플리케이션의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피트니스 코치인 시리가 적당한 운동을 제안하고 독려하는 식이다. 애플워치, 비전프로와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결합하면 그 시너지는 배가 된다. 애플의 기능과 앱스토어 내 여타 애플리케이션 사이의 협업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일례로 애플은 애플 뮤직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음성과 악기를 분리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서 노래를 리믹스하고자 하는 고객에게 유용한 기능이 될 수 있다.

AI 디바이스

시리와 iOS,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애플 인공지능의 경쟁자는 오픈AI도, 구글도, MS도 아니다. 애플의 잠재적 경쟁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성을 갖추고 귀찮은 과정을 줄여 주는 AI 에이전트, 가상 비서 디바이스다. 미국의 인공지능 기업 ‘휴메인(Humane)’은 스마트폰을 없애거나 적어도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AI 디바이스를 개발하고 있다. 휴메인이 개발한 AI 핀은 옷에 고정된 스마트 스피커다. 화면이 없고, 음성과 작은 터치로 제어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다양한 기능을 선보이지만, 클라우드를 거친다는 점과 학습 곡선으로 인한 진입 장벽이 단점으로 꼽힌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고객이 다른 기기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문법과 사용 방법을 스스로 익히고 찾아 나서야 한다. 같은 기능을 익숙한 기기에서 활용할 수 있다면 AI 디바이스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플 AI 생태계

팀 쿡은 2021년 스티브 잡스 10주기 행사에서 전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잡스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의 관점으로 보도록 했다.” 잡스의 철학을 잇는 애플은 AI 자체가 아닌 ‘AI가 바꿀 수 있는 세상의 모습’을 볼 것이다. 지금껏 생성형 인공지능은 재미있는 놀이를 가능케 하는 장난감, 혹은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학습 곡선 위의 존재로 인식됐다. 애플의 생태계와 하드웨어, 스마트폰이 만들어 온 익숙한 세계에 덧붙은 AI는 지금의 아이폰처럼 사용자 경험과 일상생활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될 수 있다. 나의 모바일 자아, 하드웨어, 내 건강 데이터와 가상 비서까지 하나로 긴밀히 연결된, 일종의 생태계다. 애플 이후의 AI는 독립된 기술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경험 그 자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IT MATTERS

애플은 가상 비서, 시리뿐 아니라 ‘MGIE’라는 이름의 이미지 편집기도 함께 연구 중이다. 편집 내용을 자연어로 설명하면 그대로 이미지가 편집되는 식이다. 하늘을 파랗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만 할 수 있다면 굳이 노출과 채도를 건드리지 않아도 된다. 이외에도 센서 데이터를 활용한 헬스 케어 기능, 리비안과 협력을 추진하는 사라지지 않은 애플카까지. 애플이 손대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는 넓다.

방대한 인공지능의 바다 위에서 애플이 넘어서야 할 것은 끓어 오르는 AI 버블과 숨 가쁜 속도감이다. WWDC에서 인공지능 전략을 발표할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도 주가가 요동친다. 애플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3퍼센트 감소했다. 역성장에도 불구하고 AI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실적 발표 이후 애플의 주가는 5.97퍼센트 상승했다.

주가를 유지하고, 타 기업의 빠른 기술 개발 경쟁 속도에 맞추기 위해 애플이 성급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성급함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애플이 속도로 승부를 가르는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애플다운 경험에는 데이터 프라이버시에 대한 집착과 유려한 디자인이 핵심에 자리한다. 안전하고 유려한 온디바이스 AI 시대를 위해서는 조금 더 오랜 고민이 필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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