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

커피업계의 애플

속도가 아닌 품질

 
커피업계의 애플이라 불리며 수많은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는 블루보틀커피(Blue Bottle Coffee)가 서울 삼청동에 매장을 낸다는 보도가 나온 날, 한국의 블루보틀 팬들은 열광했다. SNS는 블루보틀의 한국 진출 소식으로 들썩였고, 삼청동 인근의 임대료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전 세계에서 미국과 일본 단 두 나라에 겨우 50여 개 매장이 있을 뿐인 커피숍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미치도록 맛있다는 커피 때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일단 매장 수에서 스타벅스(Starbucks) 같은 글로벌 커피 체인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블루보틀 커피를 마셔 본 고객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부 커피 전문가들은 블루보틀 커피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기호 식품인 커피의 맛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블루보틀에 대한 열광적 지지는 커피 맛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맛이 아니라면, 애플을 떠올리게 하는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커피업계의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스페셜티 커피[1]를 선도했다는 이미지 때문일까. 물론 이 모든 것이 블루보틀의 인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블루보틀이 얼마 전 네슬레(Nestlé)에 인수되며 알려진 약 7000억 원이라는 가치 평가액의 근거로는 부족해 보인다. 인수 당시의 매장 수가 40여 곳이니 산술적으로는 매장당 200억 원의 가치 평가를 받은 셈인데, 블루보틀을 단순한 커피숍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액수다. 개인이 소자본으로 창업한 매장이 어떻게 15년 만에 천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일까.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 ©Christopher Michel
블루보틀은 2002년 교향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커피 마니아 제임스 프리먼(James Freeman)이 창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원예 창고 한쪽 구석을 월세 600달러에 계약하고 한 번에 겨우 3킬로그램도 안 되는 적은 양만 볶을 수 있는 로스팅 기기를 구입한 것이 그 시작의 전부였다. 지금도 블루보틀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창업 당시의 사업 모델은 각 가정에 전화를 걸어서 커피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맞춤형 원두를 차에 실어서 배달해 주는 형태였다고 한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커피 브랜드의 시작이 전화로 영업하고 배달하는 일이었다니 놀랍다. 이때의 프리먼은 음악을 그만두고 처음으로 취직한 회사에서도 해고당한 직후여서 가진 돈이 얼마 없었던 것 같다. 주말에는 프리먼이 직접 로스팅한 커피 원두와 추출 도구를 싣고 장터에 나가 커피를 팔았다.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간편한 핸드 드립 도구를 이동식 카트에 실어 가서 즉석에서 커피를 내려 주었다고 한다.

자본금도 변변치 않은 자영업자로 시작한 프리먼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전략과 시대의 흐름이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블루보틀이 문을 연 2002년은 전 세계에 50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세계적 브랜드로 급성장하고 있던 스타벅스를 필두로 커피 산업 자체가 급성장을 하던 시기였다. 수많은 브랜드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블루보틀은 경쟁 카페와는 완전히 다른 선택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식음료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관리하는 지표 중 한 가지가 바로 속도다. 음식이 주문될 때부터 제공될 때까지의 속도를 빠르게 할수록 테이블 회전율이 올라가서 매출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드니 고객의 만족도도 높아진다. 특히 스타벅스 같은 카페들은 속도가 굉장히 중요하다. 커피를 주문한 뒤 1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면 출근길 테이크아웃 고객들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프리먼은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정반대 방식을 선택했다. 핸드 드립은 주문부터 제공까지 평균 10분이 걸린다. 손수레에 실을 수 있는 핸드 드립 도구의 개수도 제한될 테니,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꽤 오랜 시간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프리먼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줄을 섰다. 입소문 덕분이었다. 인근 지역에 블루보틀 커피의 맛이 좋다는 소문이 퍼졌고 기꺼이 기다리겠다는 손님들이 늘었다.

프리먼은 속도 대신 품질을 택함으로써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우리는 최고의 커피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다’라는 비전으로 ‘로스팅한 지 48시간 이내의 스페셜티 원두만을 제공한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느리지만 맛있는 커피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원두는 로스팅 후 약간의 숙성을 거친 24시간에서 48시간 이내에 가장 신선하고 맛있다. 블루보틀은 대량으로 로스팅을 해 수많은 매장으로 배송하는 대형 커피 전문점들과는 차별화되는 확실히 신선한 맛을 무기로 삼은 것이다.

블루보틀이 속도보다 품질을 강조하면서 10분이나 걸리는 핸드 드립을 선택한 것은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2002년 미국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슬로푸드(slow food)’라는 메가 트렌드를 만난 것이다. 패스트푸드는 품질이 좋지 않은 정크푸드(junk food)라는 인식이 퍼지던 때였다. 고객들은 속도에만 가치를 두는 식품 브랜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좋은 품질의 음식을 제공하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슬로푸드 열풍이 확산되면서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는 실적 악화를 이유로 CEO를 교체하고 레스토랑에 가까운 ‘패스트 캐주얼’[2]로 방향을 선회했다.

상상해 보자. 시간에 쫓기는 오피스타운이 아니라 여유 넘치는 도시의 장터 한편에서 수레를 앞에 둔 한 남자가 커피를 팔고 있다. 48시간 이내에 로스팅한 스페셜티 원두를 주문 즉시 갈아서 정성껏 내려 주는 바리스타는 커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해준다. 커피 마니아인 손님이라면 그와의 대화는 매우 즐거웠을 것이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나고 받아 든 한 잔의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면? 그 경험은 고객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색다른 경험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경험하고자 하는 문화가 퍼져 나가던 그 시점에, 블루보틀은 트렌드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bluebottlecoffee

 
커피 전문가가 아닌 클라리넷 연주자 출신이 창고 한구석에서 창업한 기업, 블루보틀은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디자인과 최고의 제품을 추구하는 가치관, 열성적인 마니아로 인해 IT 기업 애플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이 “스타벅스가 마이크로소프트라면, 블루보틀은 애플”이라고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커피업계의 애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프리먼도 2012년에 고객들이 애플 스토어에서 누리는 경험을 블루보틀에 이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블루보틀과 애플은 그 스토리와 디자인뿐 아니라 브랜드 전략에서도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두 기업 모두 다수의 대중을 타깃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알아보는 소수의 마니아를 주 고객으로 한다. 제품의 질이나 기능을 직접적으로 강조하기보다는 감성적인 접근을 통해 마케팅을 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브랜드를 완성시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마케팅 전략이 아니다. 고객이 인정하는 브랜드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정성이다. 기업이 주장하는 철학과 실제 고객의 경험이 일치해야만 진정성 있는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후 수십 가지였던 제품 종류를 단 네 가지로 줄임으로써 최고의 품질을 갖춘 제품만을 제공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 준 것처럼 말이다. 블루보틀의 경우엔 로스팅 후 48시간 이내의 원두를 사용하고 여덟 가지의 메뉴만을 판매한다는 결정이 고객에게 진정성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몇 안 되는 메뉴로 높은 수익을 내는 것, 브랜드의 철학을 유지하면서 매장을 확장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블루보틀은 여기서 영리한 전략을 세운다. 매장은 고객이 브랜드를 체험하는 장소로 운영하고, 수익은 다른 곳에서 올릴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한 것이다. 예컨대 최고의 원두를 판매한다는 핵심 가치를 활용해 블루보틀의 원두를 다른 카페에 납품하는 사업 모델을 만든다. 블루보틀의 원두를 사용한다는 것이 커피의 품질을 보증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카페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원두 판매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업 모델이다. 좌석 수, 상품 제공 시간, 고객 체류 시간, 인건비 등 제약이 많은 매장 운영과는 달리, 원두 납품 사업은 공간적 한계가 없다. 매력적인 MD 상품도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 질 좋은 커피를 만든다는 사업의 본질에 맞게 머그컵, 드리퍼부터 여행용 커피 도구 세트까지 커피와 관련된 용품을 제작, 판매하는 것이다. 블루보틀은 이렇게 진정성 있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맥북과 아이폰 같은 제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애플이 애플뮤직, 앱스토어, 아이클라우드 같은 서비스로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것처럼 말이다.

블루보틀의 성공 요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온라인 전략이다. 블루보틀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의 인기였다. 새하얀 벽면에 푸른 병 로고가 그려진 단순한 매장 인테리어는 ‘인증 샷’을 찍어서 올리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 블루보틀 매장은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예쁜 ‘셀카’를 건질 수 있다. 매장이 많지 않다는 희소성은 방문자들이 적극적으로 SNS에 사진을 공유하는 동력이 된다. SNS를 통해 브랜드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브랜드 선호도는 상승한다. 이런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블루보틀이 2012년 구글 벤처스의 투자를 받으면서 구축한 온라인 전략과 마케팅 플랜으로 이뤄낸 결과다. 다른 브랜드보다 빠르게 SNS의 성장을 예측하고 맞춤형 전략을 세웠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한국에는 5000개가 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있다. 그러나 그 많은 프랜차이즈 기업들 가운데 블루보틀과 같은 진정성을 브랜드로 구축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인구 대비 자영업자 비중이 세계 4위를 기록할 정도로 자영업자가 많지만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한 사례 자체를 찾기 어렵다.[3] 양적인 성장만 했지 질적인 성장은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다.

블루보틀의 이야기는 대기업 계열사도 아니었고, 초기 투자 자본이 넉넉하지 않았던 한 자영업자의 성공 스토리이다. 국내 9만 개가 넘는 카페 사업자들과 프랜차이즈 본사는 물론, 브랜딩과 마케팅을 고민하는 많은 분들이 블루보틀의 사례에서 고객을 사로잡는 새로운 브랜딩 전략과 수익 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
스페셜티 커피 협회(Specialty Coffee Association)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커피를 평가하고 100점 중 80점 이상의 커피를 스페셜티 커피로 분류해 등급이 정해진다. 스페셜티 커피는 특수하고 이상적인 기후에서 재배되며, 풍미와 맛이 독특하고 결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엄격한 기준에 따라 분류되고 관리된다.
[2]
패스트 캐주얼 레스토랑은 격식 없이 평상복을 입고 찾아가서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는 식당을 지칭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멕시칸 레스토랑 치폴레를 들 수 있다.
[3]
〈2017년 한눈에 보는 기업가정신 보고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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