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EP NO MORE
6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예술

공연, 영화 따위를 보거나 듣는 사람. 표준국어대사전은 관객(觀客)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지만 이 공연을 보고 나면 관객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관객은 보거나 듣는 사람을 넘어 체험하는 사람이 되고, 무대 밖에서 배우의 연기를 구경하는 대신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된다.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하고, 2011년 뉴욕으로 터전을 옮겨 현재까지 무기한 연장 공연 중인 슬립노모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예술의 역할이 관객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라면, 슬립노모어는 그 역할에 가장 충실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슬립노모어의 관객들은 보는 대신 체험한다. 버려진 창고를 낡은 호텔로 개조한 공연장에는 100개가 넘는 방이 있고, 관객들은 돌아다니며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감상한다. 배우 옆에 바짝 붙어 서도 되고, 방 안에 있는 소품을 만지거나 냄새를 맡아도 된다. 시각, 청각은 물론 후각과 촉각까지 자극하는 공연은 관객의 몸에 생생한 경험으로 각인된다.

틀을 깨는 혁신과 예술성을 강조하다 오히려 관객의 외면을 받고 마는 수많은 공연들과는 달리, 슬립노모어는 초연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공연으로 꼽히고 있다. 공연장인 맥키트릭 호텔이 있는 맨해튼 남서부 첼시는 세계 공연의 중심인 브로드웨이만큼 주목받는 장소가 됐다. 2016년부터는 상하이로 진출해 아시아 관객을 사로잡았다. 슬립노모어는 여러 번 보는 공연으로도 유명하다. 관객 모두의 경험이 다르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니 다시 봐도 지루하지 않다.

문학과 예술을 연구하는 저자는 최근 예술계의 화두로 부상한 관객 참여의 진정한 의미를 슬립노모어에서 발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참여 그 자체가 아니라 관객의 욕구에 있다는 것이다. 슬립노모어는 배우를 따라 공연장을 누비고 싶은 관객도, 조용히 소파에 앉아 소품을 만져 보고 싶은 관객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참여의 형태를 보장한다. 관객에게 선택의 자유, 참여의 권리를 주는 것이다.

슬립노모어를 기획한 펠릭스 배럿은 말한다. “관객이 들어왔을 때 그들의 감각이 완벽하게 바뀌기를 기대한다.” “관객을 안락한 객석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결정을 해야 하는 세계로 이끌고 싶었다.” 관객에게 결정권을 주고, 새로운 감각을 선사하는 일은 예술의 본질이다. 여기서 관객을 고객이나 사용자로, 예술을 각자의 분야로 바꿔도 의미는 통할 것이다. 결국 혁신은 본질에서 나온다. 슬립노모어는 기존의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혁신의 기술을 말하고 있다.

곽민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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