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를 찾아서
 

2022년 세 번째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일찍 경제적 자유를 이뤄냈다는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녀 봤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알음알음 만났습니다. 경제적 자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경제적 자유를 얻었는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죠.

경제적 자유는 우리 시대의 선악과입니다. 경제적 자유를 목표로 삼는 순간부터 우리는 노동소득만으론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덕분에 월급만으론 절대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걸 배워 버렸으니까요. 일의 기쁨과 슬픔도 모르게 됩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일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이라고 썼습니다. 보통처럼 일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건 로맨틱하지만 나이브합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보단 일의 인센티브와 스톡옵션이 우리를 경제적 자유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줍니다. 경제적 자유는 일터라는 에덴동산에서 우리를 영원히 추방시켜 버렸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은 투자입니다. 노동소득만으로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고 원하는 건 대부분 살 수 있는 삶을 살 순 없습니다. 팔다리를 쓰고 머리를 굴려야 먹고 살 수 있는 삶은 경제적 공장에 갇힌 인생입니다. 내 돈이 나를 위해 돈을 벌어다 줘야 경제적 자유를 얻고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최근엔 내 콘텐츠가 나를 위해 돈을 벌어다 주는 크리에이터 경제가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내가 회사에서 노동 소득을 추구하는 동안에도 내가 지난밤에 올린 유튜브 콘텐츠는 조회수를 타고 광고 수익을 벌어들이죠.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도 본질은 투자입니다. 시간 투자죠. 

최근들어 더 경제적 자유가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건 사방에 투자 기회가 널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판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최소한 3년 동안은 투자에 상당히 유리한 시간이었습니다. 2020년 3월 12일 뉴욕 다우존스 지수는 하루 만에 9.99퍼센트나 폭락합니다. 코로나 대확산 탓이었죠. 1920년대 대공황을 방불케 하는 공포의 도가니였습니다. 이때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나섰습니다. “미국 경제를 지키기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하죠. 이때부터 기회가 유동성을 타고 둥둥 떠다니기 시작합니다. 잘만 잡으면 경제적 자유를 도모해 볼 기회였죠. 

기회는 국내 증시에도 있었습니다. 해외 증시에도 있었습니다. 코인 시장에도 있었습니다. 스타트업계에도 있었습니다. VC시장에도 있었습니다. 자산 시장 도처에 이토록 기회는 넘쳐났지만 모두가 기회를 잡은 것도 누구나 기회를 이룬 것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기회를 보고도 겁이 나서 외면했습니다. 누군가는 기회를 보면서도 기회인 줄 몰랐습니다. 누군가는 기회를 잡았지만 살리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기회를 돈으로 이뤘지만 돈을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리스크가 무서워서 기회를 외면하면서 돈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스스로한테 거짓말을 했죠. 

이런 투자 시장의 희비는 여의도 증권가에선 일상적입니다. 2020년 이후부턴 온 나라에서 일상적이 됐습니다. 사석에서 만난 민주당 청년정책 담당자와 이런 전망이 했었습니다. “미국 정치처럼 한국 정치에서도 코스피 지수가 선거 결과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는 이재명 정부에선 코스피 5000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죠.  시대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겁니다. 노동 소득만으론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없는 세상에선 일자리를 늘리는 것만큼이나 자본 시장을 키우는 게 절실한 일이 됩니다. 자본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국민이 늘어날수록 정치도 유권자는 곧 투자자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될 겁니다. 
경제적 자유인을 찾기 위해 맨 처음 만나본 사람들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었습니다. 스타트업 CEO들이 오프 더 레코드로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지금 테헤란로와 판교 일대에 벼락부자들이 넘쳐난다는 뒷이야기였습니다. 개발로 투자로 상장으로 일찍 경제적 자유를 얻은 혁신가들입니다. 기술과 금융이 낳은 신흥 계층이죠. 테헤란로에선 이들의 자본이 결국 대한민국의 소비 시장과 부동산 시장과 자산 시장을 뿌리부터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강남과 판교 일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숨은 요인 가운데 하나가 기술 신흥 계급입니다. 실리콘밸리 기술 부자들이 모여살면서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샌프란시스코처럼 돼 가고 있는 겁니다.

기술 신흥 자산 계급의 등장설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2000년대 벤처붐이 낳은 젊은 부자 몇 사람과 각각 독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허상도 아니었습니다. 분명 경제적 자유를 얻은 상태였죠. 다만 부자를 벽안시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극도로 저공 비행을 할 뿐이었습니다. 2020년대의 신흥 기술 자산 계급도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시대도 바뀌었습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개념도 생겨났습니다. 영앤리치라는 이름도 생겨났습니다. 프리지아처럼 가짜만 아니라면 경제적 자유는 선망의 대상이지 지탄의 대상이 아닙니다. 

실체가 있는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달리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경제적 자유의 실체를 찾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상화폐 투자로 거부가 된 투자자 몇 사람이 자신들의 자산을 모두 합쳐서 시중 은행 인수를 고려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찔한 변동성이 늘 문제지만 가상화폐 자산가들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죠. 수소문 끝에 몇 사람을 만나봤습니다. 가상화폐 투자로 수백 억을 벌었다는 젊은 투자자를 만났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투자 기법을 명쾌하게 설명하질 못했습니다. 벌었던 돈도 지키지 못한 듯했습니다. ICO를 통해 큰 돈을 번 것인지 ICO한 코인 가격을 조작해서 돈을 번 것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본격 취재를 시작하면 꼬리 자르기를 하듯 흔적을 지우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젊은 가상 화폐 투자자들은 모두 게임 마니아였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게임과 가상화폐 투자를 병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덕분에 2015년 국내에 가상화폐 시장이 처음 열리던 초창기 무렵부터 플레이어로 참여할 수 있었죠. 부동산이 노년을 위한 경제적 자유의 열쇠라면 주식이 중년의 경제적 자유라면 코인은 청년의 경제적 자유입니다. 가상화폐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청년층한테 가장 유리한 자산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물론 제도화가 마무리되면 주식 시장처럼 기관들의 투전판이 될 공산이 큽니다. 

이렇게 애타게 경제적 자유의 실체를 찾아다닌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부 노동의 황혼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초라한 노동 소득조차 앞으론 얻기 어려운 세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대퇴사의 시대는 필연적 사회 현상입니다. 합리적인 이유로 자진해서 일터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겁니다. 영국에선 전방위적 탈출이라고 표현합니다. 분명한 건 밀레니얼 세대와 젠지 세대의 퇴사 열풍은 전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겁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죠.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긱이코노미와 크리에이터 경제의 부상으로 시키는 일을 하는 임플로이가 되기보단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워커가 되겠다는 선택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이건 동전의 양면입니다. 기업들은 점점 더 플랫폼화돼가고 있습니다. 플랫폼은 워커의 천국입니다. 유튜브가 대표적이죠.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대표적인 워커입니다. 문제는 플랫폼한테 워커는 대체 가능한 생산 요소라는 사실입니다. 생산의 3요소는 노동과 토지와 자본입니다. 이 중에서 토지는 빅데이터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자본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반면에 노동은 아이디어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대표적인 아이디어 경제입니다. 그런데 아이디어는 언제나 더 나은 아이디어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봐야 미래가 없다며 전방위적 대퇴사를 해도 기다리는 건 언제나 대체 가능한 플랫폼 노동자의 삶일 수 있습니다. 플랫폼은 워커들을 위한 도금된 천국인 겁니다. 게다가 기업들은 이젠 긱이코노미를 이용해서 노동을 외주화하는데 너무나도 능숙합니다. 대퇴사의 시대에 대응하는 경영 방식이죠. 입사가 없는 회사를 만드는 겁니다. 바로 그렇게 배달 음식 플랫폼들은 스스로는 조리도 배달도 하지 않지만 음식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대퇴사의 시대는 노동 현장에서 암울한 미래를 직시한 청년 세대의 이유 있는 반항입니다. 다만 모두가 경제적 자유를 얻지는 못할 겁니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경제적 자유입니다. 노동소외의 시대에 살아날 방법이 이것 밖엔 없는 겁니다. 이제 일은 투자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드 머니를 만드는 행위입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든 일의 인센티브와 스톡옵션이든 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있는 노동의 시대는 지나갔으니까요. 모노츠쿠리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일에 장인 정신을 담을 시간에 경제적 자유를 위한 투자에 나서는 게 현명한 선택이니까요. 우리 스스로 노동을 포트폴리오화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제조업의 위기지만 결국엔 전 분야에 걸친 숙련의 부재가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퇴사는 기업에 기억상실증을 유발합니다. 회사 안에서 전수돼 온 암묵지가 잊혀집니다. 무엇이 망실됐는지도 모른 채 지워지는 것입니다. 일과 직장의 정의가 바뀌면서 벌어지는 경제 현상입니다.  

사실 우리가 경제적 자유라는 선악과를 먹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한 건 뱀이었죠. 우리에게 경제적 자유를 꿈꾸라고 유혹한 건 소비입니다. 경제적 자유는 한마디로 돈 걱정 없이 사는 겁니다. 최저 생계비란 의미도 되지만 최대 생활비란 의미도 됩니다. 사고 싶은 건 거의 다 살 수 있는 삶이 경제적 자유죠. 과거의 노동자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출근했습니다. 이때 노동자들이 일을 하게 만드는 유인은 가족이었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가 회사를 움직이는 지렛대였죠. 지금의 노동자들에겐 가족은 과거만큼 절대 가치가 아닙니다. 1인 가구의 시대니까요.

우리 시대 노동자들이 일을 하게 만드는 유인은 카드값입니다. 지난달의 내가 소비를 한 탓에 이번달의 내가 출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소비하기 위해 일합니다. 지구 환경을 위해서든 통장 잔고를 위해서든 소비를 줄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소용 없습니다. 소비는 풍선효과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경제 활동입니다. 지금 줄이면 나중에 늘어나는 게 소비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로나로 인한 보복 소비죠. 우리는 돈을 못 써서 환장하는 소비자본주의 노예들입니다. 코로나 봉쇄 상황에서도 우리는 어떻게든 나를 위한 선물을 할 온라인 쇼핑몰을 찾아내고야 마는 소비의 화신들입니다. 우리가 경제적 자유에 집착하게 된 건 우리가 소비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주식 시장이 대혼돈의 카오스로 빠져들었습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됐기 때문입니다. 시장은 3월 빅샷의 가능성도 점치고 있습니다. 빅샷은 기준 금리를 한꺼번에 두 단계씩 0.5퍼센트포인트를 올려버리는 겁니다. 빅샷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전략입니다. 일단 한번 크게 올려버리면 뒤에 0.25퍼센트포인트씩 올려도 아무래도 충격이 덜할 테니까요. 1980년대 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라면 하고도 남았을 일입니다. 폴 볼커는 기준 금리를 20퍼센트까지 불도저처럼 올렸습니다. 제롬 파월은 폴 볼커처럼 하지도 못하지만 해서도 안 됩니다.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동시에 실물 경제를 박살냈습니다. 기업들은 도산하고 실업자들이 득시글대는 아비규환을 만들었습니다. 폴 볼커가 물가를 잡은 동력은 금리를 올려서도 있지만 경기가 망가져서도 있습니다.

지금 세계 경제는 제로 금리라는 인공호흡기로 버티고 있습니다. 인공호흡기에 공급되는 산소량을 줄인다고 해서 환자가 건강해진 건 아닙니다.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중환자입니다. 그나마 자산 시장의 버블이 중환자의 통증을 완화해줬다고 봐야 합니다. 버블이 일종의 몰핀 진통제였던 겁니다. 버블이 너무 빨리 깨지면 글로벌 경제라는 환자는 통증에 고스란히 노출될 겁니다. 제롬 파월은 인플레이션도 잡으면서 경기도 살리면서 자산 시장도 지키는 기적을 일으켜야 합니다. 연임했을 때 그걸 하겠다고 약속한 셈이었죠. 

문제는 이렇게 투자 시장이 망가지면 경제적 자유로의 탈출구가 좁아진다는 겁니다. 곧 퍼플리싱될 북저널리즘의 인터뷰 전자책 〈올프 오브 여의아일랜드〉에서 인터뷰한 전문 투자자 장지웅 대표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부의 이동은 이미 시작됐고 결코 막을 수 없는 대세다.” 장지웅 대표는 경제적 자유를 이뤄냈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다 만난 큰 손 투자자입니다. 장지웅 대표는 부의 이동이 주식에서 시작됐고 가상화폐로 가속화됐다고 분석합니다. 부의 이동이 시작됐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고 이뤄낸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 아니라 투자의 환희와 공포를 추구하는 인구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죠.

이 시대에 저널리즘이 할 일도 있습니다. 독자의 파이낸셜 리터러시를 높이는 것이죠. 《월스트리트저널》이나 《파이낸셜타임즈》처럼 독자에게 시장에 대한 올바른 분석틀을 정리해주는 저널리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쩌면 디지털 리터러시보다도 더 생존에 직결된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가 소비를 계속하는 한 투자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파월이 실패해서 시장이 망가지고 경기가 추락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은 공포로 포장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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