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Z세대의 불안

10월 24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골드만삭스 인턴들이 결혼, 육아, 집을 포기하고 있다. 이들은 왜 N포 세대가 됐나?

  •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의 ‘2022 인턴 서베이’에서 ‘N포 세대’의 정서가 읽힌다.
  • 1년 사이 결혼, 육아, 반려동물의 부모 되기에 대한 기대치가 절반씩 줄었다. 
  • 전 세계 젊은 금융 엘리트들의 불안은 고용 시장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DEFINITION_ 골드만삭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다국적 투자 은행이다. 설립한 지 150년이 넘었고 24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4만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익을 위해 탈법을 일삼는 등 잇따른 도덕성 논란과 높은 업무 강도로 월가에서 가장 악명 높은 집단이다. 2021년 3월 1년 차 미만의 애널리스트들이 진행한 자체 설문 조사에 따르면, 동료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95시간이며 입사 후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크게 훼손됐다. ‘학대’로 표현된 이 같은 업무 강도에도 이번 2022년 여름 인턴십의 지원자는 2021년 대비 16퍼센트 증가해 전 세계 23만 6000명이었다. 대부분 갓 졸업한 대학생이다. 미주 지역에만 7만 9000명이 몰렸다. 합격률 1.5퍼센트의 인턴십을 뚫어낸 이들은 일견 세대론을 비껴가는 ‘다 가진 자’로 보인다.
KEYPLAYER_ 세대론 밖의 Z세대

세대론은 쉽다. 그래서 깊은 이해를 어렵게 한다. 어떤 현상을 세대론의 틀에 끼우면 많은 변수가 납작해진다. 장기화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덧 상수가 되면서 기후 위기도 잊히고 지금 시대의 화두는 경제 위기와 인플레이션이다. 이 키워드 앞에서 밀레니얼은 고물가, 부동산 가격 상승, 성장 둔화 등으로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로 읽히고 있다. 치열해진 경쟁으로 인해 번아웃과 대퇴사(Great Resignation),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은 일터의 MZ세대를 관통하는 일상적 문법이 됐다. 지금 화제가 되는 한 설문 조사 결과는 세대론 밖의 Z세대를 조명하고 있다.
REFERENCE_ 라이프스타일

골드만삭스는 2017년부터 매년 자사의 여름 인턴십 참가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해 왔다. 지표는 매년 조금씩 다르지만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다양하다. 2470명 이상이 응답한 2022년 여름 인턴 설문 조사에서는 생활 패턴, 소비 습관, 투자 포트폴리오, 소셜 미디어 사용 습관, 선호하는 협업툴, 이직 시 고려 요소, 예상 정년, 삶 전반에 대한 가치관, 정신 건강 유지법, 미래 전망, 여가 활동 등이 인포그래픽에 담겼다. 구체적인 만큼 읽어낼 수 있는 것도 많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에서 마치 N포 세대의 일면을 보는 듯한 새로운 변화가 포착된다. 이들은 무엇을 겁내고 있나?
NUMBER_ 1/2

그래프에서 눈여겨볼 것은 향후 10년 내 결혼, 반려동물, 육아에 대한 기대인데 전년 대비 절반씩 수치가 줄었다. 전통적 관계에 대한 믿음이 1년 새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정된 관계’의 기준에 까다로워진 모습은 같은 조사의 다른 지표로도 나타난다. 정신 건강을 챙기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를 묻는 질문에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가 45퍼센트로 가장 많았지만, 정작 이에 준하는 중요한 인간관계를 만든다면 지인 소개(31퍼센트)나 앱(6퍼센트)를 통하지 않고 직접 맺기(52퍼센트)를 희망했다. 집이나 정착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2021년도 조사에서 자가(自家)의 구매를 희망한다는 응답은 83퍼센트였지만 2022년도 조사에선 57퍼센트가 “성공이 곧 어디든 이전할 수 있는 자유”라는 답을 냈다. 자가 구매 등 정착을 원하는 응답은 43퍼센트로 줄었다.
  • 향후 10년 이내 결혼을 하거나 안정된 연애 관계를 가질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2021년에 88퍼센트였으나 45퍼센트로 줄었다.
  • 반려동물의 부모가 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2021년에 60퍼센트였으나 31퍼센트로 줄었다.
  • 육아를 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2021년에 57퍼센트였으나 25퍼센트로 줄었다.

STRATEGY_ 시추에이션십

인생의 다른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안정적이고 정착된 관계를 탈피하려는 모습은 ‘시추에이션십(situationship)’이라는 트렌드로 나타난 바 있다. 팬데믹 이후 틱톡이나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는 키워드다. 미국 툴레인대학교의 리사 웨이드 사회학 부교수가 2020~2021년 150명의 학부생을 인터뷰한 것에 따르면 Z세대는 관계 정립이나 관계에 대한 과몰입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엘리자베스 암스트롱 사회학 교수 역시 Z세대가 회색 지대를 즐기는 것을 ‘전통적 관계 발전’[1]에 대한 저항이라 설명한다. 다만 골드만삭스 인턴들의 1년 새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RECIPE_ 침체의 공포

핵심 중 하나는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 인턴 조사에서 무려 86퍼센트가 경기 침체가 오고 있다고 믿었다. 2021년, 코로나19의 치명률이 낮아지고 대대적 리오프닝이 이뤄지며 낙관적 미래 전망이 가능했지만 전쟁과 인플레이션이 이 가능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두려움은 취준생 전반에 퍼져있다. 대학생을 위한 미국 구직 플랫폼인 핸드셰이크(Handshake)의 최고 교육 전략 책임자 크리스틴 크루즈버가라(Christine Cruzvergara)는 학부생들이 경제 위기에 대한 신호를 반복적으로 접하며 인생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데 차질을 빚고 있다고 설명한다. 핸드셰이크의 2023 졸업생 보고서에 따르면 졸업과 취업을 앞둔 학생들의 기업 선호 요인도 보수화됐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응답자의 74퍼센트가 기업의 브랜드나 성장 가능성보다 안정성과 급여를 골랐다. 경기 침체는 정말로 오는 걸까?
RISK_ 칼바람

미국 노동부가 지난 10월 7일 발표한 미국의 고용 지표는 강력했다. 비농업 고용에서 26만 3000명이 증가했으며, 실업률은 3.5퍼센트 감소했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다시 고강도 긴축을 할 수 있는 여지로 작용했다.[2] 다만 이러한 고용 지표는 Z세대 인재의 취업 선호도가 높은 투자 은행(IB)에서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최근 실적 부진으로 인해 주력 사업인 투자 은행과 트레이딩을 하나의 단위로 통합하는 등 대대적 구조조정에 나섰다. 골드만삭스 역대 가장 큰 조직 개편이다. 지난 2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8퍼센트 감소한 게 주효했다. 지난 9월에는 수백 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 존슨어소시에이츠는 “올해 월가의 일부 기업들이 전체 인원의 5~10퍼센트를 정리해고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월가에 몰린 젊은 인재들에게는 두려운 소식이다.
EFFECT_ 테크, 너마저

애널리스트들이 경력을 쌓고 흔히 이직하는 테크 기업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빅테크에도 감원 칼바람이 부는 중이다. 스냅 쇼크부터 예견된 기술주 약세 때문이다.
  • 메타는 2004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감원에 들어갔다. 지난 9월 신규 채용 동결 및 1만 2000여 명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체 직원의 1퍼센트를 감원하고 신규 채용을 축소한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1000명 미만의 직원이 해고될 것으로 보인다.
  • 아마존은 2분기 인력 10만 명을 감축하고 소매 부문 채용을 중단했다.
  • 인텔 역시 2016년 이후 수천 명을 감원한다. 판매·마케팅 부문을 중심으로 20퍼센트 가량이 감원될 예정이다.

INSIGHT_ 인재 경쟁의 늪

사실 월가는 인재 경쟁에서 빅테크나 스타트업에 꾸준히 밀려왔다. 2021년만 해도 모건스탠리나 JP모건 등 월가의 유명 글로벌 투자 은행들이 인력난에 시달렸고, 골드만삭스도 1년차 애널리스트의 연봉을 30퍼센트 인상하는 등 강수를 뒀다. 월가의 살인적인 근무 환경에 비해 빅테크나 스타트업은 업무 자율도가 비교적 높고 대우도 좋았기에 많은 인력이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다만 이 흐름은 인플레이션으로 또 한 번 뒤집혔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앞다툰 긴축으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탓에 기술주나 성장주의 매력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월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올해 초 월가의 최상위권 투자 은행들은 인턴 보수를 전년 대비 37.2퍼센트 인상하며 인재 잡기로 나섰다. 골드만삭스의 인턴 지원자 수가 높았던 이유다. 자기자본 투자사인 제인 스트리트는 인턴 연봉으로 20만 달러(2억 4600만 원)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치솟던 인턴 몸값의 거품은 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회계 법인인 KPMG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CEO의 51퍼센트가 앞으로 6개월 내 감원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고용 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실업 수당 청구가 감소했지만 역설적으로 인재들이 향할 곳은 사라지고 있다.
FORESIGHT_ HRM

애널리스트 이탈 심화의 배경이던 테크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연봉 인플레이션은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다. IB 직군은 아니지만 기존 IT 인력 역시 빅테크가 채용 규모를 줄인 탓에 일반 기업으로 다소 이동하고 있다. 미국 의류 브랜드인 칼하트의 카트리나 아구스티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올 3월만 해도 IT 인력 찾기가 어려웠으나 5월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평한다. 다만 젊은 인재들이 눈높이를 낮추면 일터에 헌신할 동기 역시 작아진다.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면 언제든 다시 자본 시장이나 테크 기업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고급 인력 시장에서의 최대 화두는 결국 휴먼 리소스 관리(HRM)가 될 것으로 보인다.


Z세대와 일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퇴직과 번아웃 사이〉, 〈인재 전쟁〉, 〈일하면 뭐하니?〉를, Z세대 전반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면 《Z세대는 그런 게 아니고》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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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애, 결혼, 자녀 갖기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말한다.
[2]
통상 경기 침체의 기준은 실질 GDP의 2분기 이상 감소다. 미국의 경우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침체 여부를 판단하는데 미국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니 영향력이 크다. NBER은 침체 여부 판단을 위해 GDP 이외에도 생산·고용·소비·소득 등의 다양한 지표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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