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테쉬의 제국

2024년 3월 15일, explained

초저가, Ultra-Fast. 중국의 공장이 세계 시장을 정복한다.

Temu의 ‘억만장자처럼 쇼핑하세요’ 캠페인. 사진: Te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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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으로 대표되는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 업체)에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일명 ‘짝퉁’ 제품이나 상품 소개와 다른 상품을 배송받는 등 소비자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내놓은 대책이다. 방법은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화’다. 해외 플랫폼의 경우 공정위가 직접 들여다볼 수 없으니, 국내 대리인을 두게 해, 대신 조사를 받거나 소비자 보호 의무를 지우겠다는 것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WHY NOW

이 정도면 공해다. 거의 모든 온라인 공간을 뒤덮고 있는 C-커머스 업체들 광고 얘기다. 특히 테무의 광고를 피하기란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만큼 이들 플랫폼의 영향력은 커졌다.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은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향한 정복 전쟁을 수행 중이다. 이미 제국은 그 틀을 갖췄다. 초저가가 내리는 도파민의 은총에서 헤어날 수 없는, ‘알테쉬’의 제국이다.

알테쉬가 왔다

우리가 지금 가장 많이 쓰는 쇼핑 앱은 쿠팡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쓰는 앱은 알리익스프레스다. 아직 차이는 크다. 지난 2월 기준으로 두 쇼핑몰의 사용자 수 차이는 3.5배 정도다. 그러나 알리익스프레스는 1년 만에 2배 이상 성장했다. 쿠팡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알리에게 밀려난 11번가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이 테무다. 2023년 7월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발을 디뎠는데 벌써 G마켓, 티몬, 위메프 등을 제쳤다. 무서운 기세다. 11번가는 2위 탈환은커녕 3위 수성도 위태롭다.

밑지는 장사

당황하고 있는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시장을 거의 독과점하다시피 하는 아마존도 밀리고 있다. 특히 테무의 기세가 무섭다. 작년 한 해 미국 쇼핑 앱 다운로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쉬인이 그 뒤를 이었다.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3위, 안드로이드 스토어에서는 2위였다. 당연한 결과다. 광고비를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JP Morgan에 따르면, 테무의 마케팅 비용은 2023년에 17억 달러에 달했으며, 2024년에는 3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 삭스는 테무가 주문 한 건당 평균 7달러씩 밑지고 팔았다고 추정한다.

억만장자의 쇼핑몰

물론 밑지는 장사를 영원히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마케팅이다. 하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따라붙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미국 슈퍼볼 광고에 가장 많은 금액을 쏟아부은 광고주는 테무였다. 30초에 약 93억 원에 달하는 광고비를 부담하고 무려 여섯 번이나 광고를 집행했다. 하지만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말이 안 된다는 조롱이 터져 나왔다. 엄청난 물량 공세에도 테무의 광고는 슈퍼볼 광고 선호도 조사에서 최하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극초저가의 시대

억만장자는 테무에서 쇼핑하지 않는다. 그럴 리 없다. 그러나 테무에겐 상관없다. 어차피 소비 시장은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무나 알리는 저가 쇼핑몰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극초저가다. 천 원으로도 살 수 있는 상품이 넘쳐난다. 테무의 중국 모회사 ‘핀뚸뚸’는 알리바바와 징둥닷컴에 이은 후발 주자로 시장에 진출했다. 특별한 전략이 필요했던 핀뚸뚸는 타깃을 명확히 했다. 1~2 위안에도 민감한 사람들, 이른바 ‘제5 순환도로 바깥’에 사는 중소 도시와 농촌 지역의 중년 여성부터 공략한 것이다. 전략은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가 불황과 고물가를 앓고 있다. 테무에겐 참 좋은 시절이다.

그냥 둘러보다 샀어

게다가 이 ‘극초저가’ 전략이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새로운 시장에서는 다른 방식으로도 소비되고 있다. 마치 ‘다이소 플렉스’처럼, 소비 자체를 도파민 공급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몇만 원어치 주문해서 도착한 물건 중에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조잡한 상품이 꽤 섞여 있다. 하지만 이미 이것저것 담아 구매 버튼을 누르며 즐거움을 경험했고, 워낙에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받은 물건 중 3분의 1 정도는 그냥 버려도 상관없다. 내 취향에 꼭 맞는 좋은 물건을 세심히 골라 소유할 재정적 여유도, 그 물건을 잘 보관해 사용할 주거 공간도 없는 불황기의 소비자에게 테무나 알리는 ‘온라인 스타필드’처럼 기능한다.

Dupe

게다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른바 ‘짝퉁’ 소비의 감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짝퉁은 거짓말이었다. 내가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거짓의 과시다. 그러나 ‘Dupe’는 다르다. 저렴한 카피 제품 (Duplication)을 뜻하는 은어, ‘Dupe’는 틱톡의 패션 채널에서 흔히 목격된다. 젊은 세대에게 Dupe를 구매하는 행위는 게임인 동시에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는 오늘 나온 고가 브랜드의 Dupe가 내일 업로드된다. 중국에 ‘보테가 베네타’는 없다. 하지만 똑같이 만들 수 있는 공장이 있다.

C2M

우리는 중국의 공장을 쉬이 잊는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는 중국산 공산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는 유통 과정에서 마진이 붙고 브랜드 가격도 덧붙었다. C-커머스 업체들이 공략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어차피 다 중국산인데, 공장과 소비자 사이에 불필요한 과정을 생략하면 시장이 열린다는 계산이다. 테무의 C2M(Customer-to-Manufacturer) 유통 방식이 대표적이다. 중간 유통 단계를 아예 없애고 공장과 소비자 사이에 테무만 남겼다. 가격도, 제품도 테무가 정한다. 말이 되나 싶지만, 팬데믹 이후 내수 경기가 침체하면서 멈춰 선 공장이 많아져 이 구조가 가능하다. 쉬인도 중국 전역에 6000여 개의 공장과 협업하고 있다. 속도가 실력인 패션 업계에서는 대단한 경쟁력이 된다. H&M, ZARA 등의 패스트 패션보다 빠른, ‘real-time commerce’가 실현되는 배경이다.

IT MATTERS

이미 중국에는 싸고 빠르게 만들어 팔 능력이 있었다. 소비자가 브랜드에 가치를 지불할 마음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요즘, C-커머스는 기회를 잡았다. ‘알테쉬’ 제국은 점점 커질 것이다. 물론 위험 요소도 있다. 최근 알리 등에 입점하는 국내 기업은 늘어나지만, 여전히 플랫폼이 갖는 조악한 이미지 때문에 직접 입점은 꺼리는 분위기다. 입점 사실을 쉬쉬하는 기업도 있을 정도다. ‘샤이 알리’ 현상이다. 불쾌한 쇼핑 경험이 쌓이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made in china’는 지난 몇십 년간 ‘저품질’의 이미지를 극복하는 데에 성공했다. C-커머스에게도 계획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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