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은 이미 해외에서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OECD 36개국 중 26개국이 비대면 진료를 단계적으로 허용했고, 온라인 의약품 유통 시장은 연 20퍼센트 가까운 성장률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낯설기만 합니다. “약국 개설자 및 의약품 판매 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현행
약사법 50조 1항 때문입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이메일이나 팩스로 처방전을 전송받고, 약국 직원이나 배달 서비스로 약을 전달하는 행위는 위법입니다. 규제엔 백약이 무효입니다.
그렇다고 현재 닥터나우가 불법 서비스라는 건 아닙니다.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진 건 지난해 2월부터입니다.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비대면 전화 진료와 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의료기관 내 코로나19 환자 유입 및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습니다. 또 그해 12월 보건복지부는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인 동안 참여 의사가 있는 전국 의료기관에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다고도
공표했습니다.
지난달 10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경제인 간담회에서 해외보다 과도하게 규제가 적용되는 영역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규제 챌린지’입니다. 시장 변화에 정부가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민간의 애로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일정상으로 10월까지 관련 부처, 협의회, 민관회의 등 3단계 논의를 거쳐 연말에는 개선 여부를 확정 발표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번 규제 챌린지 중 보건 의료 분야에서는 ‘비대면 진료 및 의약품 원격 조제 규제 개선’, ‘약 배달 서비스 제한적 허용’이
포함됐습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
정부 발표 이후 대한약사회와 전국 16개 시도약사회는 곧바로 규탄 성명을
냈습니다. 규제 챌린지를 ‘보건 의료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시도’라고 규정하고, 약 배달에 대한 규제 완화는 곧 약 조제와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형 약국을 양산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되면 보건 의료 서비스의 상업화, 영리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겁니다. 또한 독과점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등장하면 지역 약국을 몰락시키고, 결국 취약계층의 의약품 접근성은 떨어질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닥터나우로 대표되는 플랫폼에 대한 거부감을 적극적으로 표출한 것 역시 이때부터입니다. 특히 “진료부터 약 배달까지 30분”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닥터나우 광고가 6월 말 서울 지하철 역사에 게재되자 약사 단체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서울시 약사회와 24개 구 약사회는 6월 24일부터 7월 2일까지 릴레이 시위를 펼쳤고, 5일에는 보건복지부에 항의 방문해 한시적 비대면 진료 및 전화 처방 허용을 즉각 종료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심지어는 지역 약사회의 닥터나우 사무실 무단 침입 공방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들이 가장 문제 삼은 건 의약품의 오남용입니다. 발모제나 피임약, 발기부전 치료제와 같은 오남용 우려 의약품은 물론, 졸피뎀 같은 마약류가 전화 한 통으로 통용되는 ‘처방 쇼핑’이 무분별하게 발생할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약사가 대면으로 복약 정보를 제공해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복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많은데,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이 확산하면 건강 정보에 대한 낮은 이해도에서 기인한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숫자로 검증한 효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