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고 싶은 커뮤니티, 레딧

6월 20일, explained

영미권 최대 커뮤니티 레딧에 불이 꺼졌다. 돈을 벌겠다는 CEO의 결정 때문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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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형 커뮤니티 ‘레딧’이 대규모 ‘정전 사태’에 직면했다. 사용자들이 게시판을 속속 비공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커뮤니티 분란 소식이 아니다. 현지 언론들은 앞다투어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으며 이 사태로 구글의 검색 품질이 떨어졌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WHY NOW

지금은 말뭉치 시대다. 말이 곧 돈이 되는 시대란 얘기다. 말은 언어이면서 곧 데이터다. 몇 개월 사이에, 일상에 안착해 버린 생성형 AI시대의 새로운 기름이며 금광이다. 말뭉치 시대를 맞이하며 우리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논란들이 있다. 그리고 이번 레딧 사태는 그 논란들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해외토픽의 성지, 레딧

레딧은 커뮤니티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야깃거리를 생성해 내는 곳, 그리고 밈(meme)이 태어나는 공간이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소문이 생겨나지 않는다. 레딧은 4억 3천만 명이 넘는 월간 활성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영미권 최대 커뮤니티다. 그만큼 힘도 세다. 우리에겐 2021년, 게임스톱 주가 폭등 사건으로 이름을 알렸다. 거대 금융 자본의 공매도 작전에 맞서 개미들이 기념비적인 승리를 거둔 사건이었다. 이 개미들이 집결하여 앞으로 돌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 레딧이 있었다.

지방 정부의 반역 모의

레딧은 분산형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정치로 치자면 연방정부 같은 것이다. 연방을 구성하는 몇천 개의 지방정부가 서브 레딧이다. 심지어 이 지방정부들은 독립성도 매우 강하다. 2021년 당시의 승리도 레딧의 것이라기보다는 r/WallStreetBets라는 서브 레딧 하나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지방정부들이 연방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 몇천 개의 서브 레딧들이 비공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연방정부가 돈을 벌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말’을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선언이다.

API로 돈을 벌겠다는 야심

레딧은 지난 4월, 레딧 커뮤니티의 모든 게시물과 대화들을 끌어다 쓰고 싶다면 돈을 내라고 선언했다.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액세스 유료화 계획이다. 표면적 이유는 ‘챗GPT’다. 오픈AI를 비롯해 구글, 메타 등 생성형 AI를 개발하고 있는 빅테크들은 지금 ‘말뭉치’ 교과서를 긁어모으고 있다. AI에게 인간의 언어를 학습시키기 위해서다. 레딧은 18년의 역사를 지닌 말뭉치 금맥이다. 빅테크 입장에서는 최고 품질의 ‘공짜’ 교과서다. 지금, 이 판을 뒤엎겠다는 얘기다. 레딧뿐만이 아니다.

말이 돈이 될 때

일론 머스크는 훨씬 빨랐다. ‘트위터’는 이미 지난 2월 API 액세스를 유료화한 바 있다. 개발자들의 전문성 높은 지식 IN, ‘스택 오버플로’도 빅테크를 상대로 비용을 청구할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저널》, CNN 등은 관련해서 오픈AI에 대한 소송까지 검토한 바 있다. 바야흐로, 말이 돈이 되는 시대다. 그렇다면 말은 누구의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발화자의 권리

레딧 유저들은 이번 유료화 정책이 레딧을 망칠 것이라 말한다. 레딧의 데이터를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은 빅테크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레딧의 서드파티 앱도 레딧에서 데이터를 끌어다가 서비스한다. 즉, 보다 쉽고 편리한 기능을 넣어 레딧 커뮤니티를 이용 가능하게끔 하는 앱들도 이제 돈을 내든 서비스를 접든 선택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가장 큰 레딧 서드파티 앱, ‘Apollo’는 향후 레딧에 매년 2천만 달러를 지급해야 할 것이라며 오는 30일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스크랩과 저장에 초점을 맞춘 플랫폼, 장애인을 위해 접근성 향상에 초점을 맞춘 앱 들도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진다. 7천 개 서브 레딧의 운영자들은 항의 차원에서 게시판을 비공개 전환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럴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스티브 허프먼 레딧 CEO는 유저들과는 생각이 다르다.

공론장의 입장료

대규모 정전사태 이후 레딧은 서브 레딧의 운영자를 사실상 해임, 교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커뮤니티를 만들고 논의를 관리해 온 주체들을 언제든 날릴 수 있다는 경고다. 태세 전환의 목적은 ‘상장’이다. 상장에 성공하려면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허프먼 CEO의 생각이다. 따라서 말이 돈이 된다면 당연히 이것을 팔 수 있어야 한다. 빅테크가 말뭉치를 가져간다면 돈을 내야 한다. 유저들이 서드파티 앱이 아니라 공식 앱을 사용해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레딧이 돈을 벌어야 할 때이며, 무임승차는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임승차를 막을 권리가 ‘기업’에게 있다는 논리다. 다만, 오픈AI는 이것이 무임승차가 아니라 ‘공정’이라고 말한다.

공공재로서의 말

말은 뱉은 사람의 것이다. 그러나 공론장에 말을 한 번 뱉고 나면 그 말은 모두의 것이 된다. 오픈AI의 주장이 그것이다.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공익을 위한 사용이라는 얘기다. 허점이 있다. 오픈AI는 지난 3월 GPT-4 언어모델을 출시하였으며 이는 유료 가입자만 사용할 수 있다. 공정 이용인지, 영리 추구인지 샘 알트먼이 명확히 설명해야 할 때이다.

IT MATTERS

이번 사태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먼저 커뮤니티가, 그것도 분산형 커뮤니티가 기업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레딧을 운영하려면 돈이 든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수익 창출은 필요하다. 그런데 기업이 되는 것은 다른 얘기다. 커뮤니티의 목적은 공론장의 생성과 유지에 있지만 기업의 목적은 성장에 있기 때문이다. 서드파티 앱 생태계가 무너질 것을 우려한 서브 레딧 운영자들의 이번 항의는 두 가지 목적 사이의 간극을 우려하며 터져 나왔다. 우리나라는 반대 사례가 존재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포털사가 운영하는 블로그와 카페가 그것이다. 광고성 게시물과 댓글 어뷰징 등의 문제는 물론, AI 눈속임 광고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생성형 AI 시대, 공론장에서 생성된 말뭉치의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다. 이 논의가 진정 인류의 공공선을 위한 것이 되려면 생성형 AI의 무서운 본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챗GPT나 바드와 같은 서비스는 단순히 말뭉치를 공짜로 가져다가 학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공론장에 모여있던 사람들까지 함께 빨아들인다. 예를 들어 스택 오버플로의 경우 2022년 1월 이후 트래픽이 매달 평균 6퍼센트씩 감소해 왔고 2023년 3월에는 무려 13.9퍼센트나 떨어졌다. 생성형 AI의 영향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공론장에서는 개인의 말이 대화로 발전하고 그 대화는 논의가 되어 관점을 만들고 가치를 생성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공개된 채로 저장된다. 하지만 AI와의 질문과 답변은 비공개이며 공공의 저장소로서의 기능도 하지 못한다. 사람이 없으면 소문이 생길 수 없다.

마지막으로 테크노 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 낼 2020년대에 관한 우려 섞인 전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실리콘밸리는 ‘테크노 유토피아(Techno-Utopia)’에 대한 희망에 경도되어 있었다. 중앙에 집중화된 힘을 개인에게 분산시키면 개인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기술이 보편적 기본소득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청사진 등이 그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손에 개인 디바이스,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홍채인식을 하면 코인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가 키워낸 빅테크 기업들은 자본주의 그 자체가 되었다. 자유를 얻은 개인은 타깃 광고의 대상이 되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정보들의 대가는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 중독이다. 빌 게이츠도, 일론 머스크도, 마크 저커버그도 실리콘밸리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했고 차원이 다른 부자가 되었다. 오픈AI의 샘 알트먼이 그다음 차례다. 그리고 레딧의 CEO, 허프먼도 스스로를 ‘테크노 자유주의자’라고 칭한다. 도래하는 말뭉치의 시대는 과연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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