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피케이션
완결

구찌피케이션

‘구찌스러움’의 탄생


2017년 ‘구찌’ 또는 ‘구찌스러움(Gucci-ish)’이라는 키워드의 구글 검색 건수는 3500만 건 이상으로 패션 분야에서 검색 건수 1위를 차지했다. 패션 검색 플랫폼 리스트(Lyst)가 발표한 ‘2017 연례 패션 보고서’에서는 구찌가 ‘올해의 브랜드’와 ‘올해의 제품’을 비롯한 주요 검색 항목에서 1위를 휩쓸었다.[1] 2018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70.1퍼센트 급증한 온라인 판매를 바탕으로 82억 8400만 유로(약 10조 5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년 대비 36.9퍼센트 상승한 수치다. 구찌가 속한 케링(KERING) 그룹 전체 매출의 60퍼센트에 해당한다.[2] 이런 변화의 시작은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로 영입한 2015 F/W시즌부터였다. 그 후부터 구찌는 브랜드 자체가 트렌드가 되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여 주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교체를 통해 가장 성공적인 리브랜딩(rebranding)을 해낸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구찌의 화려한 부활은 패션 업계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2014년까지만 해도 구찌는 5년 넘게 매출이 매년 20퍼센트씩 감소하는 패션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노쇠한 브랜드였고,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와 개성 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 브랜드 사이에서 애매한 포지셔닝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5년 신임 CEO로 부임한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i)는 구찌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였던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고 핵심 고객과 채널, 제품군을 재정의하면서 구찌를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브랜드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미켈레는 2015년 F/W 시즌 첫 번째 구찌 컬렉션에서 혁신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전에 구찌를 맡았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Tom Ford)나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ninni)의 구찌와 전혀 다르고, 그 어떤 럭셔리 브랜드와도 유사하지 않은 스타일은 패션계 전체에 신선한 영감을 주었다. 1972년생인 미켈레는 외부에서는 거의 존재를 알지 못할 정도의 무명 디자이너였다. 펜디(Fendi) 액세서리 디자이너 출신으로 2002년 구찌에 합류해 2011년부터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지아니니를 보좌했던 미켈레는 지아니니의 사임 후 CEO 비자리의 제안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지 한 달 만에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마르코 비자리(좌)와 알렉산드로 미켈레(우).
미켈레는 경계와 규칙이 없는 자유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여기에는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 모던과 빈티지 등 상반된 요소들이 섞여 있다. 히피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미켈레는 ‘패션은 서로 다른 영감의 원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절충적인 대화’라는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3] 그의 스타일은 기존 럭셔리 패션의 소비자층에게는 너무 화려하거나 과장된 것으로 느껴진 반면,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롭고 독특한 스타일로 받아들여졌다.

구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가 이처럼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은 브랜드의 핵심 타깃을 재정의했기 때문이다. 마르코 비자리는 구찌의 핵심 타깃을 기존의 베이비 부머(baby boomer) 세대에서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로 수정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새로움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고, 콘텐츠와 감성,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 움직이며 자기표현을 중시한다고 분석하고[4] 미켈레를 기용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이에 맞게 변화시켰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대부분의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층으로 설정되어 있다. 많은 패션 브랜드들도 이들의 잠재적 소비 능력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구찌 이전에는 그 어떤 브랜드도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자체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하위 생산 라인이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만든 한정된 상품만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했던 것이다.

반면 비자리는 자신의 스타일을 대중에게 뚜렷이 보여 준 적 없는 무명의 디자이너를 선택해 브랜드를 재탄생시켰다. 내부 조직 측면에서도 35세 이하 직원의 의견을 듣고 경영에 반영하는 절차를 시스템화한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과 ‘위원회(committee)’를 조직해, 회사 제품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밀레니얼 세대의 관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비자리는 디자인, 조직, 생산 라인, 마케팅 등 거의 모든 부분을 개편하는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을 브랜드 전체에 반영했다. 브랜드를 인지할 수 있는 핵심적인 상징 요소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을 혁신한 셈이다. 그 결과는 밀레니얼의 열광적인 호응이었다. 2018년 구찌 전체 매출의 62퍼센트는 35세 이하의 소비자에서 나왔다.[5]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리브랜딩


패션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상품 기획부터 디자인, VMD(Visual Merchandising), 광고, 홍보 등 브랜드의 비주얼과 관련된 모든 영역을 총괄한다. 특히 현대의 패션 브랜드는 뷰티, 건축, 여행 등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는 패션을 다른 영역과 적절히 융합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하고 가치를 높이는 역량까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패션계는 급진적인 변화의 시대를 맞이했다. 미학적으로 뛰어나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하는 천재 디자이너라고 해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디자인을 보여 주고 실적을 증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2016년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던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지난 2년간 미국 패션 어워드(CFDA) 트로피를 세 번이나 거머쥘 만큼 디자인의 조형적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한 채 브랜드를 떠났다.[6] 기존의 미니멀한 스타일에서 아방가르드와 팝 아트 요소를 담은 스타일로 변화를 시도했지만,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패션 브랜드들은 수익 부진에서 벗어나고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리브랜딩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패션계의 리브랜딩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바꾸기보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교체해 디자인 콘셉트를 전면 수정하는 방법이 주로 쓰이고 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세부 요소인 브랜드명(brand name), 로고(logo), 컬러(color)를 변형해 새로운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를 통한 패션 브랜드의 리브랜딩은 2010년대에 들어 본격화되다가 2015년 이후로 현저히 증가했다. 교체 시기 또한 더욱 짧아지고 있는 추세다.[7] ‘스타 디자이너=보장된 성공’은 이제 더 이상 당연한 공식이 아니다. 명성이 높은 디자이너를 선택해 그 영향력에 의존했던 과거와는 달리, 2010년대에 들어서는 젊고 혁신적인 디자이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경제 위기로 인해 패션 브랜드의 매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IT 산업이 급격히 발달해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면서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개인화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기도 하다. 또 다른 원인은 젊은 소비층의 증가다. 안정적인 것보다는 새롭고 자극적인 것에 흥미를 느끼고, 반응 속도도 매우 빠른 젊은 소비자는 브랜드의 전통적인 디자인에는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이들은 디자인 측면에서 새롭고 젊은 브랜드를 요구한다. 이에 따라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패션 하우스가 트렌디한 패션 브랜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하우스의 전통과 시대적 트렌드를 적절히 결합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브랜드의 성패를 가를 만큼 중요해졌다.

최근에는 제품의 기능이나 질적 우수성뿐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 브랜드 경험, 스토리 등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요소도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이제 패션 브랜드는 미적 완성도뿐 아니라 브랜드 아이덴티티 표현까지 고려하며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다. 브랜드의 모든 제품을 아이덴티티의 관점에서 관리하는 브랜딩의 개념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고 이를 반영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재정립하는 것이 패션 브랜드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구찌는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바꿔 리브랜딩한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이고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켈레를 통해 리브랜딩된 구찌의 행보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량이 패션 브랜드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를 보여 준다. 또한 새로운 소비자층에 적응해야 하는 패션계의 현안을 대변하고 있다. 고유성은 유지하되 아이덴티티를 유연하게 변형하는 것은 패션 브랜드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미켈레의 컬렉션 준비 현장



디자인 전략; 유연성과 확장성


시장과 소비자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패션 브랜드에게는 지속 가능한 아이덴티티(sustainable identity)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전통만을 내세우지 않고 통일성 속의 다양성, 유연성, 확장성에 중심을 두면서 브랜드 진화를 꾀해야 한다. 유연성(flexibility)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기본형에서 파생된 다양한 형태의 비주얼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에서 변하지 않아야 할 부분은 유지하면서 변해야 할 부분에는 시대적 요구를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다. 확장성(expandability)은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다양한 각도로 활용하고, 다른 문화 영역과의 융합에 열려 있는 것을 의미한다.

미켈레는 기존의 구찌가 추구한 클래식하고 럭셔리한 분위기를 과감히 탈피하는 대신 젊은 세대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대담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규칙, 성(性), 시대의 구분이 없는 스타일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적 기준이나 시선에 자신의 패션을 맞추기보다는 스스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방식을 옷으로 표현한다.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에 민감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자신만의 존재감과 감성을 표출할 수 있는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다양한 요소가 섞여 있는 미켈레의 스타일은 이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했다. 바로 기존 패션의 틀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옷을 입는 방식이다.[8] 미켈레의 구찌는 크로스오버, 빈티지와 스트리트, 맥시멀리즘(maximalism) 등의 스타일 요소를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아이코닉 아이템을 재구성한 것 역시 구찌의 디자인 전략이다.

① 크로스오버

구찌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상반된 요소가 공존하는 복합 문화를 보여 준다. ‘예술, 성별, 문화, 지위를 아우르는 것이 구찌의 아름다움에 대한 비전[9]’이라고 표방한 것처럼, 새로운 구찌의 디자인에는 남과 여, 동양과 서양, 아름다움(Beauty)과 추함(Ugly), 과거와 현재 등 상반된 이미지들이 혼합되어 있다. 여기에 미켈레만의 개성이 더해지면서 기존 구찌의 스타일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감성이 표현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구찌는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했다.

구찌의 주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의 어떤 세대보다도 문화적 배경과 인종, 젠더에 관대한 특성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패션에서도 각자의 다름을 초월하고자 한다. 이는 ‘나는 젠더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에서 패션을 시작했다’[10]고 말하는 미켈레의 디자인 철학과도 상통한다. 이제 패션에서 남녀의 의상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단지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에게는 패션이 개인의 젠더 정체성보다는 미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역사상 가장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으며, 48퍼센트는 백인이 아닌 유색 인종(Non-Caucasian)으로 알려져 있다.[11] 때문에 같은 인종끼리 느끼는 문화적 유대감은 점차 줄어들고, 다양한 인종이 감정적으로 공유하는 복합적 문화가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리브랜딩된 구찌가 선보인 디자인은 성적 매력을 강조한 톰 포드나 엘레강스하고 럭셔리한 분위기를 강조한 프리다 지아니니의 디자인과 달리 남성복과 여성복의 요소들이 융합되어 성의 구분이 모호한 디자인이었다. 이는 젠더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과 다른 인종이나 취향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은 젊은 세대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졌다.

② 빈티지, 스트리트

구찌의 수장이 되기 전부터 미켈레의 대표적인 스타일이었던 레트로한 빈티지 스타일은 스트리트 스타일과 결합되면서 ‘너드 시크(Nerd Chic·사회성이 부족한 비주류 집단인 괴짜를 표현한 패션)’나 ‘긱 시크(Geek Chic·컴퓨터와 기술 마니아들의 괴짜 패션)’로 표현됐다. 이전의 구찌는 시크, 럭셔리, 페미닌 등 사회적 주류의 단정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표현해 왔다. 그러나 미켈레는 오래된 듯한 느낌을 주는 의상에 헤어밴드, 피어싱, 레이어드된 많은 액세서리 등 하위문화의 요소들을 가져와 기존의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보지 못했던 자유분방함을 표현해 젊은 소비자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전 세대는 패션에 있어서도 지위나 직업, 사회적 성공도를 보여 줄 수 있는 격식을 갖춘 정형화된 스타일을 선호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에게 패션은 사회적 의미보다는 개인의 만족과 자아 표현의 측면이 크기 때문에,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이분법적 구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글리 패션(Ugly Fashion)’ 같은 새로운 스타일이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대에게 아름다움과 추함은 좋은 것(好)과 싫은 것(不好)이 아니라 다른 취향일 뿐이다. 추함이 아름다움의 반대가 아니라 또 다른 아름다움의 발견일 수 있는 것이다. 미켈레의 너드 시크나 긱 시크 스타일은 기성세대의 눈에는 사회적 주류에 포함되지 못한 비주류의 패션이지만, 젊은 소비자에게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신선하고 흥미로운 패션으로 받아들여졌다.

③ 맥시멀리즘

미켈레는 다양한 조형적 요소를 풍부하게 사용해 맥시멀리즘 스타일을 선보인다. 보색 대비 등 원색의 조합을 비롯해 리본, 자수, 보석 등이 들어간 과장된 디테일과 액세서리를 활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스타일은 정제되고 모던한 표현이 주를 이루는 기존 럭셔리 브랜드와는 다른, 일명 ‘구찌화(Guccification)’라 불리는 특유의 시각적 정체성을 구축했다.[12]
 
(좌) 보색 관계인 핑크와 그린의 색 조합, 구찌의 시그니처 디테일인 자수와 리본으로 장식된 의상. (우) 구찌의 전통적인 상징 ‘더 웹’의 BRB(블루-레드-블루) 컬러 조합과 리본, 코르사쥬, 자수를 활용한 투피스. Ⓒvogue.com
구찌 가든의 이미지를 표현한 의상. Ⓒgucci.com
가장 ‘구찌스러운’ 스타일을 보여 준 컬렉션 (2016 F/W)
④ 아이코닉 아이템 재구성

구찌는 브랜드 고유의 역사를 담고 있는 다양한 아이코닉 아이템(Iconic Item)을 새로운 감각에 맞게 재구성했다. 소비자에게 변화된 브랜드를 빠른 시간 내에 홍보하고 각인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말의 등에 안장을 고정할 때 사용하는 캔버스 밴드에서 영감을 받아 1951년에 만들어졌던 스트라이프 ‘더 웹(The Web)’은 기본 컬러 조합인 GRG(그린-레드-그린)와 응용 버전인 BRB(블루-레드-블루)가 있는데, 미켈레는 특유의 컬러 조합이 주는 캐주얼한 분위기를 살려 다양한 디자인에 활용함으로써 브랜드의 젊은 감각을 표현했다. 이 외에도 의상에서 GG 로고와 인터로킹 G(Interlocking G·알파벳 G가 서로 반대로 겹쳐진 모양의 로고)를 활용한 디테일과 패턴을 선보였다. 액세서리에서는 마몬트 백(Marmont Bag), 실비 백(Silby Bag), 디오니소스 백(Dionysus Bag), 뱀부 백(Bamboo Bag) 등 시그니처 백의 사이즈와 착장 방식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손으로 쥘 수 있는 핸들이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 작은 사이즈와 중간 사이즈, 숄더백과 미니 백, 벨트 백 등 다양한 버전이 출시됐다. 가방에 구찌의 시그니처 컬러 조합을 대담하게 매치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브랜드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더욱 확고히 하는 조형적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기존의 초고가 제품 외에도 일상생활의 ‘작은 럭셔리’ 제품들을 다양하게 제작하여 핵심 제품군에 포함시켰다. 젊은 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군을 만들면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규정한 셈이다.
 
(좌) 구찌의 이니셜을 활용한 대표적 상징 패턴인 ‘인터로킹 G’를 목걸이, 의상, 핸드백에 다양하게 활용했다. (우) ‘더 웹’의 ‘GRG’ 컬러를 기존의 디오니소스 백에 대담하게 매치시켜 캐주얼한 느낌으로 변형했다. Ⓒvogue.com
‘구찌 가든’의 아이콘인 곤충들과 GG 로고가 장식된 마몬트 벨트 백. 구찌의 벨트 백을 통해 잊혀진 아이템이었던 벨트 백이 다시금 빅 트렌드로 떠올랐다. Ⓒvogue.com



브랜딩 전략; 고유성을 변형하라


오랜 전통의 하우스 브랜드는 그 시간만큼 소비자에게 각인되어 온 시각적 상징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해 새로운 상징 요소를 만들면 리브랜딩된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브랜드 네임이나 로고와 같은 ‘언어적 요소’와 심벌을 비롯한 그래픽 이미지들로 구성된 ‘비언어적 요소’를 모두 활용하는 것이다. 브랜드의 고유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대와 호흡하고, 변화한 브랜드 환경과 스타일을 뚜렷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아이코닉 요소를 시리즈화해 유행을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에, 제품 디자인과 마케팅 분야 모두에서 활용 가치가 매우 높다.

미켈레는 이전의 어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보다 다양한 아이코닉 이미지를 파생시켰다. 구찌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이를 캐주얼한 스타일로 변형했다. 이런 시도로 구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패션 스타일은 풍부해졌고, 리뉴얼된 브랜드를 매우 빠른 속도로 소비자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① 로고 플레이

로고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상징이다. 소비자가 브랜드의 상품과 서비스에서 기대할 수 있는 품질을 본능적으로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로고의 변형은 브랜드 진화의 표현이다. 최근 패션계에는 기존 브랜드의 로고나 심벌을 재해석한 ‘로고 플레이(Logo Play)’가 주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의상이나 액세서리에 자수, 프린트, 문양 등으로 재해석한 로고를 표현하는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가 스트리트 패션과 융합하면서 캐주얼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현상이자,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밀레니얼 세대와도 부합하는 트렌드다.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기성세대는 럭셔리 패션에서 오히려 로고를 감추는 로고리스(Logoless) 스타일을 선호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SNS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럭셔리 브랜드 제품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스트리트 패션이나 스포츠 패션 스타일의 스웨트 셔츠, 신발, 가방 등에서 로고를 강조하는 스타일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GG’ 로고를 넣은 마몬트 백과 벨트는 새로운 구찌를 상징하며 최고 인기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마몬트 백과 마몬트 벨트. Ⓒgucci.com
로고 플레이는 가장 직접적으로 브랜드를 강조하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교체 주기가 짧아지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브랜드를 빠르게 홍보하는 방법이다. 특히 리브랜딩으로 브랜드 네임이나 로고 서체가 바뀌는 경우에는 더욱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된다. 구찌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교체된 후 GG 로고나 인터로킹 G, 로고의 크기를 확대하거나 반복하는 디자인을 통해 캐주얼하고 젊은 브랜드의 아우라(Aura)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브랜드의 세대교체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구찌는 일반적으로 브랜드가 중요시하는 상표권 측면에서도 유연함을 보여 주었다. 자사 로고를 무단 활용한 그래피티를 선보이던 아티스트 트레버 앤드류(Trevor Andrew)와 손잡고, 오히려 그의 예명인 ‘구찌 고스트(Gucci Ghost)’를 협업 라인의 이름으로 붙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 작업한 2018 리조트 컬렉션에서는 구찌(Gucci) 로고를 ‘GUCCY’, ‘GUCCIFY ’등으로 변형한 페이크 로고(Fake Logo)를 활용해 가품의 이미지를 풍기는 진품을 제작했다. 스스로에 대한 오마주(hommage)로 스트리트 감성을 드러낸 시도는 권위의 경계 없이 확장된 브랜드의 모습을 보여 줬다. 엄숙함보다는 유머와 신선함을 기대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GUCCY’ 로고를 사용한 가방. Ⓒgucci.com
② 서브그래픽 엘리먼트

서브그래픽 엘리먼트(Subgraphic Element)는 로고와 심벌 이외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시각적 요소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시각화할 수 있는 사물이나 이를 변형한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 등이며, 사용자가 제품을 반사적이고 즉시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기호 역할을 한다. 1966년에 만들어진 ‘구찌 가든(Gucci Garden)’은 꽃을 의미하는 ‘플로라(Flora)’와 계절을 대표하는 열매, 풍뎅이나 벌, 나비와 같은 곤충이 함께 구성된 ‘구찌의 식물도감’ 같은 이미지로, 구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 요소다.

그간의 ‘플로라’는 우아하고 페미닌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구찌의 상징이었다. 반면 새로운 구찌는 자수, 비즈(beads), 패치워크(patchwork)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비, 새, 잠자리, 도마뱀, 별, 하트, 고양이, 번개, 불꽃 등을 표현한다. 화려하고 원색적이며, 장식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는 브랜드의 고전적 서브그래픽 엘리먼트와 미켈레의 빈티지 미학이 융합된 결과다. 모던한 스타일이나 우아함을 표현하는 기존 럭셔리 브랜드의 서브그래픽 엘리먼트와 차별화되면서 인기를 얻었고, 패션 아이템에서뿐 아니라 웹 공간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새로운 구찌의 대표적인 브랜드 연상 모티브이기도 하다.
 
‘구찌 가든’ 컬렉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재정의하다


패션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패션 브랜드는 이미지와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갈수록 다양한 문화적·기술적 방식을 활용한다. 패션쇼 같은 전통적 매체는 물론 패션 전시, 패션 필름 같은 새로운 수단을 이용한다. 또한 브랜드 웹 사이트와 SNS 등 다양한 매체에서 여러 가지 시각적 표현을 제공하면서 진화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패션 소비자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 세대다. 시각 요소에 대한 반응이 빠르고, 집중 시간은 평균 8초로 짧지만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 가능하고, 텍스트 대신 이미지와 이모티콘 등의 시각적 수단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현실과 디지털 세계의 경계를 뚜렷이 인식하지도 않는다. 인스타그램(Instagram)과 스냅챗(Snapchat) 같은 이미지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선호하며, 타인이 만든 이미지를 공유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제작에 나서는 적극성을 지녔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의 47퍼센트는 소셜 미디어가 그들의 구매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다른 연령대의 19퍼센트가 영향을 받는다고 응답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13]

새로운 젊은 소비자들은 광고나 전문가의 권유보다는 스스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집한 정보와 경험을 토대로 제품의 가치를 판단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이전 세대가 주로 자신보다 높은 연령층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것과 달리, 밀레니얼 세대는 비슷한 연령대의 인플루언서에게 더욱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특성과 밀레니얼 세대의 구찌에 대한 환호를 증명하듯, SNS의 유명 인플루언서이자 래퍼인 2000년생 릴 펌프(Lil Pump)는 온몸에 구찌 제품을 두르고 ‘구찌 갱(Gucci Gang)’이라는 노래로 인기를 끌어 빌보드 차트 3위, 유튜브 조회 수 9억 회를 달성했다. 이는 기존 구찌 소비자에게는 당황스러움을, 새로운 세대에게는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밀레니얼 세대와 긴밀히 교감한 것은 구찌가 다른 패션 브랜드와 가장 차별화된 지점이었다.

구찌는 브랜드가 표방하는 가치와 디자인 철학을 새로운 주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핵심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전환했다. 꾸준히 소셜 미디어 활용을 늘려 왔고,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며, 한정 판매용 애플리케이션, 디지털 아트 작업, 가상 현실(VR), 게임 애플리케이션 등 새로운 온라인 작업에 적극 참여한다. 이런 시도를 통해 구찌는 럭셔리 패션 시장에서 새로운 세대가 원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선두에 서 있다.

구찌는 ‘디지털에 가장 능숙한 패션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는다.[14] 공식 웹 사이트에서는 ‘구찌 가든’ 등 온라인 전용 상품을 판매한다. 웹 사이트의 세부 메뉴인 ‘구찌 스토리(Gucci Story)’에는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 셀러브리티(celebrity), 캠페인, 예술적 행보 등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어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웹 사이트 중 가장 풍부한 콘텐츠를 전달한다.

2017년과 2018년에는 ‘구찌 플레이스(Gucci Place)’라는 여행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미술관, 예술가의 작업실, 복합 쇼핑 공간, 영국 공작의 저택 등 구찌의 영감을 자극했던 세계의 다양한 공간을 소개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브랜드의 취향과 가치를 반영하는 장소에 대한 정보와, 장소와 관련 있는 구찌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전달한다. CPS(Cyber Physical System) 기술을 이용해 애플리케이션에서 소개하는 장소에 실제로 가면 배지(badge)를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에서는 한정판 제품을 판매했다. 구찌만의 감성을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공간과 여행이라는 테마에 맞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표현한 사례다. 독특한 경험을 제공해 팬덤 현상을 강화한 것인데,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구찌는 코코 카피탄(Coco Capitan), 안젤리카 힉스(Angelica Hicks), 이그나시 몬레알(Ignasi Monreal), 언스킬드 워커(Unskilled Worker), 제이드 피시(Jayde Fish)와 같은 인스타그램의 젊은 스타 예술가를 발굴해 회화, 사진, 디지털 드로잉,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장르와 컬래버레이션하면서 디자인과 마케팅 영역에서 독특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패션 브랜드와 예술의 만남은 이미 여러 브랜드에서 시도했던 방식이지만, 구찌는 스트리트 패션과 연계된 스타일, 온라인 한정 판매 컬렉션, 광고 캠페인 체험 이벤트, 아트 프로젝트 등을 통해 보다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춘 콘텐츠를 공식 웹 사이트와 유튜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전개했다. 특히 디지털 아트로 제품을 현실감 있게 체험하도록 해서 단순 관람을 넘어 구매를 촉진했다.

최근 구찌와 가장 많은 작업을 한 이그나시 몬레알은 젊은 스페인 예술가다. 2015년 ‘#구찌그램(#guccigram)’을 시작으로 구찌와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다. 그의 대표 작업인 2018 S/S 캠페인은 고전 미술의 이미지를 자아내는 작품을 디지털 작업으로 제작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3D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구찌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구찌 매장의 쇼윈도를 스캔하면 캠페인을 위한 마이크로 사이트(microsite)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스마트폰 배경 화면과 몬레알의 일러스트레이션, 온라인에서 구매 가능한 구찌 제품을 둘러볼 수 있다. 매장에서는 몬레알의 작품인 ‘구찌 유니버스(Gucci Universe)’를 360도 파노라마와 가상 현실로 체험할 수 있고, 리미티드 에디션도 판매한다. 이처럼 구찌가 제공하는 새로운 브랜드 경험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연결시켜 상품 구매를 유도하며, 브랜드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구찌의 시도를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도 다시 정의되고 있다.
 
구찌×이그나시 몬레알



유에서 유를 창조하라


패션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변화다. 변화 속에서 새로운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매 시즌 트렌드가 바뀌고, 소비자의 취향이 달라지면서 새로운 취향에 맞는 스타일이 생산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브랜딩 영역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전략이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과거의 안정적인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이처럼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소비자와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가 잦아진 오늘날의 브랜딩은 반드시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과거의 획일적인 일관성 대신 유연한 일관성이 필요하다. 브랜드의 확고한 정체성인 핵심적 아이덴티티에서 출발해 동시대의 정서와 상황을 고려한 확장적 아이덴티티를 표현할 수 있는 유연성은 이제 브랜드 존립에 핵심적이다.

구찌의 변신과 성공은 현재 패션 브랜드가 처한 상황을 대변했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구찌의 성공은 뛰어난 개인 역량을 지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와 뜻을 같이하며 시대의 흐름을 읽는 조력자, 그리고 그들의 이상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현실화해 낼 수 있는 조직 및 자본과 시스템 구축,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켈레는 자신의 미적 철학이 투영된 구찌의 아이덴티티가 트렌드를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구찌의 변화는 명품 브랜드를 바라보는 대중의 기대가 변화했음을 보여 주었다. 이제 패션 브랜드는 로고를 통한 과시에서 디자이너가 주는 심미적 가치를 넘어, 고객 스스로가 판단하고 참여해서 완성해 가는 하나의 생명체 같은 존재가 되었다.

미켈레의 패션 철학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대 패션에서 디자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선택과 조합의 과정이다. 뛰어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혁신을 만드는 창조성은 물론, 다양한 분야를 융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21세기 패션의 역사에서 자신만의 독창적 디자인을 창조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평가받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역시 시간과 공간, 젠더와 예술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탁월한 융합 기술을 보여 줬던 맥시멀리스트였다. 이들은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는 경계를 두지 않는 폭넓은 심미안으로,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 온 브랜드의 고유한 아이덴티티 위에 유연성의 전략을 펼침으로써 시대의 모습이 투영된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현해 냈다.

탁월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발탁해 내놓은 파격적 디자인과 함께 가장 효과적이었던 구찌의 전략은 밀레니얼 세대와 디지털에 대한 대응이었다. 현재 패션 산업은 소셜 미디어뿐만 아니라 빅데이터, 인공지능, 가상 현실 등과 융합되면서 변화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IT 기술 혁명이 불러온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새로운 세대의 등장, 가치 중심의 소비 등이 복합 작용하면서 생겨난 결과다. 구찌는 여기에 가장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패션 브랜드의 다양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채널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패션 브랜드가 ‘밀레니얼화’된 럭셔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보여 준다. 과거의 럭셔리는 소수 계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개인화된 디지털 기기와 미디어를 활용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럭셔리를 즐길 수 있다. 새로운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환경이 맞물리면서 럭셔리 패션의 정의와 가치도 변화하고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패션 브랜드의 가치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구찌는 2019년도 1분기에도 20퍼센트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보이며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유지했으나 2분기 매출은 다소 주춤했다.[15] 이러한 데이터는 맥시멀리즘의 유행이 쇠퇴하거나, ‘구찌화된 스타일’만이 계속된다면 구찌도 언젠가는 다른 브랜드와 다를 바 없이 내리막길 앞에 놓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미켈레의 디자인 철학에는 자유, 유연성, 개성 추구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지위와 명성보다는 자신만의 독자적 스타일을 만드는 것을 중시하면서 기존 럭셔리 패션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 왔다. 여전히 미켈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고, 어쩌면 이미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된 ‘구찌화’ 스타일의 경계를 넘으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2]
박래양, 〈2018 '구찌'(Gucci) 매출 ‘10조 원’, 36.9퍼센트 대폭 성장〉, 《티알앤디에프뉴스》, 2019. 3. 13.
[5]
김효원, 〈글로벌 명품 ‘구찌’ 빠른 성장 언제까지 지속되나〉, 《티알앤디에프뉴스》, 2019. 8. 6. 
[6]
김영아, 〈급진적 세대교체〉, 《싱글즈》, 2019. 2. 9.
[7]
허유선·전재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교체된 패션 브랜드의 잡지 광고 분석 - 생 로랑, 루이 비통, 구찌를 중심으로〉, 《한국의류산업학회지》, 19(5), 2017, 549쪽.
[8]
곽도영·김현수, 〈“나, 명품이야!” 한껏 드러낸 로고, 거리를 점령하다〉, 《동아닷컴》, 2019. 1. 6.
[9]
구찌, 〈진정한 아름다움〉, 《구찌 스토리》, 2019
[11]
김병우, 〈미국의 Z세대,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KOTRA 해외시장뉴스》, 2014. 1. 3.
[12]
이도은, 〈패션 공식이 무너졌다〉, 《중앙일보》, 2018. 1. 21.
[13]
한국마케팅연구원 편집부, 〈인플루언서 마케팅〉, 《마케팅》, 50(1),  2016,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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