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패스터의 시대, 정보의 가치

6월 29일, explained

배속과 건너뛰기가 생활화됐다. 원인은 정보 과부하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시(時)성비’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감상하는 시간에서도 가성비를 따진다는 뜻이다. 팟캐스트 청취자들은 1.5배속으로 팟캐스트를 듣는다. 영화는 유튜버의 친절한 요약으로 감상한다. 시대가 경험하는 시간, 습득하는 정보의 양이 달라졌다.

WHY NOW

그 중심에는 효율적으로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는 갈증이 자리한다. 원인은 정보의 양과 주어진 시간의 불일치다. 시간이 부족한데 알아야 할 정보는 넘친다. 최대한 빠르게 정보의 핵심만 챙긴다. 정 시간이 없을 때는 화면을 캡처하거나 북마크 해둔다. 정보의 공급은 넘치는데,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집착도 강해진다. 이 현상을 제대로 파악해야 정보의 미래 가치를 내다볼 수 있다.

팟패스터

2300만 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한 어플리케이션 ‘블링키스트(Blinkist)’는 책을 리딩타임 15분 내로 요약해 전달하는 속독 플랫폼이다. 이 앱을 사용하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15분 안에 완독할 수 있다. 오디오북 서비스 ‘윌라’는 AI 배속 재생 기술을 개발했다. 고속으로 오디오북을 재생해도 음질이 깨지지 않는다. 네이버 클로바는 AI로 대화록의 요약본을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모든 콘텐츠를 요약과 배속으로 소비하는 이들을 ‘팟패스터(PodFaster)’라고 부른다. 팟패스터는 사실상 현대인과 동의어가 된 것처럼 보인다. 2022년 기준, 넷플릭스에서 ‘오프닝 건너뛰기’ 기능을 사용한 누적 횟수는 1억 3600만 회였다. ‘절약’된 시간은 195년에 달한다.

시간과 양

인류가 건너뛰기 버튼으로 쟁취한 195년을 축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요약과 배속 시대의 본질은 습득해야 할 정보량의 과잉, 그리고 그에 반해 한정된 시간이다.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더 빨리 정보를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은 언제나 한정돼 있었으니, 변한 게 있다면 정보의 양이다. 웹을 통한 상호작용은 정보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2020년의 디지털 세계를 조사한 결과, 2006년 0.16제타바이트였던 빅데이터의 양은 2020년 40제타바이트로 늘었다. 14년 사이 디지털 세계에 존재하는 정보는 250배 늘었다.

FOMO

정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현대인은 최신의 정보와 뉴스를 놓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제는 당연한 시대적 감각이 된 ‘FOMO(Fear Of Missing Out)’다. 연구에 따르면 56퍼센트의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에서 떨어져 있을 경우, 중요한 업데이트를 놓칠 것이라 두려워했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니, 그 클릭 한 번을 놓쳤을 때의 위험성이 커진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 커지자 외려 정보를 향한 집착이 심해졌다. 팬데믹으로 인해 대부분의 정보를 온라인으로 습득해야 했던 시기에는 FOMO 경향이 더욱 거세졌다.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또 다른 현상을 불렀다. 바로 기록에 대한 집착이다.

열지 않을 폴더

최근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모바일 기기에 3139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갖고 있다. 2000명의 미국인 중 절반은 모바일 기기에 있는 사진과 동영상으로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으며, 55퍼센트는 축적된 미디어의 양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북마크도 마찬가지였다. 2021년 진행된 한 실험에 따르면 대부분의 피실험자가 북마크를 생성했지만 실제로 그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배속과 요약만으로도 소화할 수 없는 정보들이 폴더와 사진첩 안에 저장된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언젠가 쓰일 미래를 위해 대기 중인 정보들은 개인용 클라우드 시장의 규모도 키웠다. 2022년에는 208억 달러 규모였던 개인용 클라우드 시장은 2027년 508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AI

정보는 더 빠른 속도로, 더 무수히 늘어날 것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생산된 40제타바이트의 정보를 조합해 또 다른 정보를 생성한다. ‘더 버지(The Verge)’의 기자 제임스 빈센트는 생성형 AI 모델이 저품질의 콘텐츠를 저렴하게, 무한히 생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I가 생성한 조합 수준의 정보는 인터넷의 규모를 압도할 정도로 늘어난다. 지난 6월 26일 비영리 단체 ‘뉴스 가드(News Guard)’는 생성형 AI가 만든 뉴스 사이트가 두 달 만에 다섯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보고했다. 출처와 진위가 불분명한 뉴스가 하루에 1000건 이상 쏟아진다. 대중을 의도적으로 속이기 위한 악성 가짜 뉴스는 다음의 문제다. 근미래가 경험할 모습은 정보의 무한한 생성, 그 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겪을 혼란이다. 정보 과부하가 만들어 낸 배속과 요약 현상은 그 예고편에 불과하다.

레딧

그렇다면 미래의 정보 소비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이 믿고 따를 정보의 정체를 예고하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AI의 시대에서 정보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나 대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는 출처다. 미국의 최대 커뮤니티 ‘레딧’이 정전 사태에 이르자, 구글은 검색 질이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무수한 정보가 쏟아지는 정보 과부하의 시대에도 레딧의 정보는 다른 것들보다 더 가치 있었다는 뜻이다. 레딧은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해시태그가 잔뜩 달린 블로그의 맛집 소개는 신뢰하지 않지만, 동네 주민이 당근마켓에 남긴 다섯 줄의 후기는 신뢰한다. 서브레딧의 힘은 그 출처를 향한 신뢰에서 나온다.

인플루언서

커뮤니티가 아닌 개인도 신뢰를 담보하는 매개가 되는 시대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틱톡과 스냅챗 사용자의 55퍼센트, 인스타그램 사용자의 52퍼센트가 인플루언서를 통해 뉴스를 접했다. 보고서는 “채널의 파편화, 잘못된 정보와 알고리즘에 대한 대중의 불안이 최고 수준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중개자에 대한 대중의 의존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보의 과부하 시대에서 현대인은 출처에 의존한다. 내가 믿는 인플루언서가 광고한 제품에는 돈을 쓰고, 내가 지지하는 인플루언서가 전하는 소식을 믿는다. 정보가 아닌 출처를 믿는 게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다. 미래에는 정보 그 자체의 가치보다 출처가 전하는 믿음의 가치가 커질 것이다.

IT MATTERS

출처를 향한 믿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건강한 대화가 오가는 커뮤니티를 활성화한다거나 토론을 지향하는 저널리즘이 지속 가능하도록 소비하는 식이다. 사람들이 출처를 믿을 수밖에 없다면, 출처 자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그럼에도, 무엇이 믿음직한 출처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결국 개인의 몫이다. 자신의 정보가 가치 있다고 주장하는 출처조차 과부하의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주식 방송, 주식 리딩 채팅방에서 발생하는 주가 조작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학계는 300년 전부터 논문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동료 평가 제도를 활용해 왔다. 학계의 동료, 편집자, 각계의 비평가가 모여 출처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식이다.

팟패스터의 시대에 필요한 건 정보를 쏟아내는 광장이 아니다. 난립하는 정보 위에서 무엇이 옳은 출처인지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이 없으면 사람들은 결국 정보의 핵심만 찾는다. 그런데 사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핵심은 배속과 요약이 포착한 ‘핵심’ 바깥에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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