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경제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2023년 8월 23일, explained

스트림플레이션 시대다. 소비자는 시험에 들고 있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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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림플레이션(Stream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넷플릭스, 훌루, 디즈니플러스 등이 일제히 광고 없는 정기 구독의 가격을 인상하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의 광고 없는 정기 구독료는 1년 새 평균 25퍼센트 상승했다. 특히 디즈니플러스는 오는 10월부터 광고 없는 요금제가 3달러 인상되는데, 이는 2019년 출시 당시 가격의 두 배다. 소비자는 시험에 들고 있다.

WHY NOW

2007년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우유나 신문에 그쳤던 구독 경제의 온라인 확장성이 입증됐다. 2011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피스 365’를 출시하며 구독 경제는 비즈니스 모델의 새로운 축이 됐다. 그로부터 십여 년, 소비자들은 구독 피로(subscription fatigue)를 호소하고 있다. 소비자도, 기업도 구독 경제의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밀당의 경제학

연방준비제도(FOMC)가 금리 인상을 ‘시사’하기만 해도 장은 하락 마감한다. 연준의 회의록은 향후 금리 추이를 보기 위한 투자자들의 단서이기 이전에 연준이 시장의 간을 보는 검지다. 스트리밍 플랫폼 시장에도 비슷한 일이 몇 년째 벌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계정 공유 단속 및 유료화를 예고하며 소비자 반응을 살폈다. 저항은 거셌다. 지난해 11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넷플릭스 구독자 120명 중 42.5퍼센트가 계정 공유를 유료화하면 구독을 취소하겠다고 답했다. 돈을 내겠다는 이용자는 24.2퍼센트에 불과했다. 스트림플레이션은 오랜 밀당의 종언이다.

규모의 경제

플랫폼은 규모의 경제다. 출혈을 감내하며 규모를 키우고 점차적으로 수익화한다. 스트리밍 기업들도 같은 전략을 썼다.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의 ‘파괴적 혁신’ 이후 대항마가 없을 것 같던 시장은 2018년 격변한다. 아마존을 포함, 각종 대기업이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들며 넷플릭스의 독주는 깨진다. 각사의 핵심 전략은 ‘킬러 콘텐츠 확보’였다. 콘텐츠 원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의 콘텐츠 원가는 2012년 17억 5000만 달러에서 2022년까지 9.5배 증가했다.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수익화 시점은 뒤로 밀렸다. 넷플릭스를 제외하면 모두 적자인데 영업 이익마저 악화하고 있었다. 스트림플레이션은 일종의 청구서인 셈이다.

역(逆) 코드 커팅

문제는 소비자의 지갑 사정이다. 과거 소비자가 케이블TV의 코드를 자르고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넘어갔다면 이제는 ‘코드 커팅(cord-cutting)’이 구독 서비스를 향하고 있다. 경기 불황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구독 지출 등 개인 예산을 관리하는 앱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로켓머니(Rocket Money)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로켓머니 등을 인용해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각종 디지털 멤버십이나 스트리밍 서비스 등 값비싼 구독 습관에 대한 재고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도했다. 특히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의 구독 취소는 2022년에 전년 대비 49퍼센트 증가했다. 잊고 있던 유료 구독은 해지되고 소비자는 더 쉬운 구독 취소를 원한다.

구독자 이주 계획

《월스트리트저널》은 스트리밍 기업들이 “고객의 충성도를 시험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가격을 높여도 구독을 끊지 않으리라는 그들의 베팅을 빗댄 말이다. 출구 전략은 광고 요금제다. 대부분 플랫폼은 광고 유무에 따라 가격이 두 배 차이 난다. 디즈니 CEO 밥 아이거는 2주 전 열린 콘퍼런스 콜에서 “더 많은 구독자가 광고 지원 층으로 이동(migrate)할 수 있게 가격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스트리밍 기업들은 광고 요금제가 점차 광고 제외 요금제보다 이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구독자 이주 계획에 따르거나 즐겨 보는 콘텐츠를 포기하거나. 기존 구독자에겐 선택의 시간이 온 것이다.

광고 요금제의 허점

그럼에도 광고 요금제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의 신규 구독자를 늘렸다. 아이거는 광고 요금제 도입과 광고 없는 구독료 인상 이후 해지 고객은 거의 없고 신규 구독자도 늘었다고 설명한다. 주목할 건 디테일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글로벌 OTT 동향 보고서가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넷플릭스 이용자의 11퍼센트, 디즈니플러스 이용자의 19퍼센트가 광고 요금제를 이용한다. 다만 이들 중 상위 요금제에서 하향 변경한 경우는 15퍼센트에 불과했다. 구독자 이주 계획이 생각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기존 구독자는 가격이 조금 인상되더라도 광고 없는 넷플릭스를 원한다는 의미다. 가격을 올리면 플랫폼을 아예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뉴 케이블

S&P 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하나 이상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미국 가정은 이미 평균 4.1개의 서비스를 쓴다. 미국의 커뮤니티 레딧의 코드 커터(cord cutter) 서브레딧에서는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현 상태를 ‘뉴 케이블(new cable)’이라고 말한다. 글쓴이의 분석에 따르면 과거의 케이블과 지금의 스트리밍을 여럿 구독하는 것에 가격 차이는 크지 않았다. 문제는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결국 케이블이나 다를 바 없이 인식되는 현 상태다. 리뷰 전문 매체 Reviews.org에 따르면 단 하나의 서비스만 이용해야 할 경우 넷플릭스를 꼽겠다는 답변이 43퍼센트였다. 기사에 대한 레딧의 반응은 대부분 조소였다. 넷플릭스가 잃고 있는 건 돈이 아니라 팬덤인 것이다.

넷플릭스를 구독한다는 것

한정훈 다이렉트 미디어랩 대표는 현재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에서 ‘오리지널의 공식’이 깨졌다고 말한다. 아마존은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등 1억 달러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했지만 실적은 좋지 않았다. 넷플릭스 역시 오리지널보다 라이선스 방식에 힘을 싣고 있다. 올해 1분기 넷플릭스 내 콘텐츠 수요 역시 오리지널에 비해 라이선스가 높았다고 알려진다. 여기에 디즈니플러스와 훌루, ESPN플러스를 번들링하는 디즈니의 전략은 케이블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지출 감소를 위해 일부 콘텐츠의 삭제도 이뤄지고 있다. 광고가 붙은 만능 채널이 되어갈수록 옅어지는 건 브랜딩이다. 개인화된 섬네일 포스터 디자인과 ‘두둥’과 같은 시그니처 사운드, 개성 있는 큐레이션 방식은 넷플릭스 구독을 힙하게 만드는 숨겨진 성공 전략이었다.

IT MATTERS

미국의 사회행동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을 때 판단이 어려운 현상을 ‘선택의 역설’이라 말한다. 지금의 구독 경제를 꿰뚫는 말이다. 구독 경제의 본질은 신뢰를 바탕으로 선택지를 줄이는 데 있다. 대체 불가능한 혜택이 더해지면 락인(Lock-in) 효과를 발휘한다. 가령 넷플릭스는 개인화 알고리즘의 고도화로 선택의 불편을 줄인 것 이외에도 그 존재만으로 기존 케이블보다 볼거리가 많다는 신뢰를 줬다. 계정 공유와 다양한 스크린에서의 범용성은 넷플릭스의 대체 불가능한 혜택이었다. 구독 과포화 현상으로 플랫폼 간 차별성이 사라지고 과거의 산업 구조와의 구별도 희미해지는 지금, 구독 경제가 고민할 것은 다시 브랜딩이다.

본질을 잃은 구독 모델은 처참한 성적표를 든다. 한국 정부가 지난 2021년부터 추진해온 소상공인 구독 경제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참여한 소상공인의 32.8퍼센트는 매출 0원, 31.2퍼센트는 매출 100만 원 이하로 나타났다. 쿠팡, 티몬, 위메프 등 대형 민간 업체와 손을 잡은 곳만 매출 증가를 맛봤다. 반면 섬세한 브랜딩으로 부진한 업계에서도 투자를 유치한 곳이 있다. 미국의 유료 미디어 매체 ‘퍽(Puck)’이다. 서브스택과 같이 작가 개개인의 브랜딩을 강화하고 구독자와의 접점을 높인 이 매체는 기사의 카테고리를 ‘할리우드’, ‘실리콘밸리’, ‘워싱턴’ 등으로 나눈 게 특징이다.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고급스럽고 업계에 정통한 이들의 통찰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들은 8월 초 시리즈B에서 1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받았다. 팬덤을 놓치면 성장은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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