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의 죽음

2023년 9월 8일, explained

인스타그램은 건재하다. 이용자가 쓰고 싶은 모습이 아닐 뿐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앞으로 유럽인들은 광고 없는 유료 인스타그램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메타가 유럽에서 자사 앱들의 유료 ‘애드 프리’ 버전을 고려하고 있어서다. 그간 유럽연합(EU)은 사용자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을 이유로 메타에 수차례 초고액의 벌금을 부과했다. 메타의 유료화 옵션은 EU가 2018년 5월부터 시행한 ‘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GDPR)’을 회피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물론 유럽인들이 실제 얼마나 유료 버전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WHY NOW

재무적 위기보다 중요한 건 존재의 위기다. 메타의 유료 버전 검토는 광고 제거에 돈을 쓸 만큼 이용자들이 열성적이고 앱이 매력적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인스타그램은 올해 초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삭제를 고려한 앱으로 알려졌다. 젊은 세대는 페이스북을 등졌고 인스타그램보다 틱톡을 즐긴다. 많은 이들은 메타 제품의 위기에서 소셜 미디어 시대의 종언을 읽는다. 초기의 가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결과 소통의 매개는 소셜 미디어의 의미와 함께 변하고 있다.

Not ‘social’ but ‘media’

가입 초기, 계정 하나를 재밌게 쓴다. 본계정이 사회적 프로필이 되며 처음으로 부계정을 만든다. 게시물을 신경써서 포스팅해야 하는 본계정에 피로감이 생긴다. 부계정을 주로 쓰게 된다. 친구들의 일상보다 광고 게시물이 피드에 노출되는 일이 잦아진다. 게시물을 올리는 횟수는 적어진다. 어느덧 쇼핑이나 브랜드 콘텐츠, 릴스를 보는 게 주가 된다. 중요한 게시물은 저장하고 재미있는 게시물은 다이렉트 메시지(DM)로 공유한다. 번호를 교환하지 않아도 되는 DM과 그룹 채팅은 생각보다 편한 기능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용자들에게 지금의 인스타그램은 채팅 기능이 지원되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다. ‘소셜’은 브랜드와 콘텐츠가 대체했다.

닫힌 커뮤니티

위 이야기에 기시감이 든다면 우연이 아니다. 인스타그램 CEO 애덤 모세리 역시 사용자가 그룹 채팅 등 닫힌(closed) 커뮤니티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팟캐스트 ‘20V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10대들의 인스타그램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살펴보면 피드보다 스토리에서, 스토리보다 DM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한다. 콘텐츠 소비와 폐쇄형 소통의 장이 되면서 인스타그램은 틱톡과 유사하게 공급자 중심의 플랫폼으로 변했다. 인플루언서인 킴 카다시안과 카일리 제너조차 메타가 릴스와 추천 알고리즘을 강화를 발표하던 2022년 7월 이렇게 말했다. “인스타그램을 다시 인스타그램답게(Make Instagram Instagram Again).”

숫자 이면
   
변화가 곧 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숫자 이면의 화학적 변화를 읽지 못하면 메타, 나아가 소셜 미디어의 위기를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 지표만 보면 인스타그램은 건재하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2023년 1월 기준 20억 명으로 페이스북, 유튜브, 왓츠앱을 이어 4위다. 미국 성인 기준 하루 사용 시간도 30.1분으로 애초부터 동영상 플랫폼으로 포지셔닝한 유튜브, 틱톡의 45~46분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메타는 이용자의 참여와 소통에 목말라 있다. 인스타그램의 현 상황을 고려하면 스레드의 출시가 다르게 보인다. 그간 메타가 스레드를 출시한 이유로는 X 이용자 흡수와 EU 규제 회피가 꼽혔다. 인스타그램과 계정을 연계해 더욱 ‘채티(chatty)’한 탈중앙화 플랫폼을 만든 것에는 이용자들의 사용 형태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분산형 메시징 앱

일련의 징후는 인스타그램의 라이벌을 재정의한다. 그간 인스타그램은 틱톡과 경쟁했다. 스레드 출시 전후로는 ‘친한 친구’ 기능이나 ‘그룹 프로필’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보도가 많아졌다. 모세리 역시 앞선 팟캐스트에서 스토리 팀 전체를 메시징에 투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분절된 폐쇄형 그룹에 특화한 기능을 내려는 건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이 더 긴밀한 연결과 커뮤니티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DM과 그룹 채팅, 닫힌 커뮤니티를 강조할수록 분산형 메시징 앱의 영역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이 영역의 강자로는 이미 디스코드와 텔레그램이 있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의 미래를 웹 3.0 시대의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정의한다. 메타가 이 흐름에 탑승하면 ‘개방’과 ‘현실 사회관계의 연결’로서의 소셜 미디어는 힘을 잃을 수 있다.

마이크로 트렌드

인스타그램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틱톡은 메가 트렌드의 본산이다. 디스코드나 텔레그램은 마이크로 트렌드의 강자다. 인스타그램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시장이 주목하는 건 유행의 파편화다. 관계 기반의 연결이 취향 기반의 연결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스코드에서는 게이머뿐 아니라 운동화 커뮤니티, 퀴어 독서 모임 등이 활성화돼 있다. 마이크로 트렌드의 좋은 예다. 인스타그램도 해시태그를 이용해 취향 기반의 연결을 도모할 수 있지만 메가 트렌드의 속성을 가진 브랜드 콘텐츠나 크리에이터의 광고가 범람하면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게 어려워졌다. 이용자들이 DM과 그룹 채팅으로 숨어버린 건 메타의 전략 실패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만은 자신만의 가치를 재정의할 수 있을까?

단순함의 미학
   
모두가 슈퍼 앱을 꿈꾸지만 이용자를 홀리는 건 단순함이다. 인스타그램은 출시 초기 단순한 UI와 콘셉트로 사랑받았다. 이용자들은 친구나 가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부담 없이 공유할 수 있었다. 현실 관계를 기반으로 한 삶의 기록은 단어의 뚯이 모호해진 소셜 미디어의 본래 의미에 가장 가까웠다. 이를 무너뜨린 건 역설적으로 ‘인스타그래머블’함이다. 안티 소셜 미디어를 표방하는 비리얼(BeReal)이 완벽주의에 대한 반향으로 탄생할 수 있던 이유다. 비리얼의 성공 요인 중 하나 역시 단순함이다. 하루 한 번 동 시간대에 24시간 동안만 이뤄지는 일상의 등가 교환은 공평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그러나 비리얼조차 이용자 수가 감소하며 완벽한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원인 분석은 다양하지만 휘발성이 놓친 기록의 가치 때문이기도 하다.

기록의 가치

정재훈 틱톡코리아 운영 총괄은 지난 7월 열린 국내 첫 기자 간담회에서 “쇼트폼 미디어 포맷이 일상을 기록하고 트렌드를 검색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했다”고 말한다. 공급자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메가 트렌드의 영향이 강한 틱톡 역시 이용자의 참여와 취향 기반의 연결, 기록과 공유를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취향 기반 셀렉트숍 29CM의 창업자 이창우 대표 역시 쇼트폼 기반의 마케팅 플랫폼 ‘닷슬래시대시’를 론칭하며 “인류 기억 저장소”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이미지와 1000자 이내의 가벼운 글로 소통하는 LG유플러스의 ‘베터’도 일상 기록 플랫폼을 표방한다. 과거의 인스타그램이 표방한 가치와도 유사하다.

IT MATTERS

과시적인 문화와 광고 없이 연결과 공유에만 집중하던 과거의 소셜 미디어는 더 이상 없다. 다음 시대의 소셜 미디어는 그 명칭과 기능이 분리돼 새로운 형태의 연결과 소통을 제안할 것이다. 다만 문화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수익 모델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그 성장은 10년짜리다.

소셜 미디어가 선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안전하고 닫힌 커뮤니티로 이행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 과정에서 페이스북, 왓츠앱, 인스타그램, 스레드로 이뤄진 가장 거대한 소셜 미디어 제국 메타의 움직임은 대세를 결정하게 될 공산이 크다. 메타가 틱톡을 따라가려다 뒤늦게 디스코드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메타의 소셜 미디어, 특히 인스타그램의 오랜 팬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분명한 건 지금처럼 메시징 앱으로만 쓰는 이용자가 늘어날 경우 인스타그램의 간단한 사진 공유 기능과 기록의 가치는 새로운 플랫폼의 영역으로 분화하게 될 거라는 점이다. 이용자들의 소셜 미디어 생활이 다중 플랫폼화하는 경향이 가속화할수록 플랫폼 간 연결이 용이한 분산형 플랫폼이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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