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식 혁신의 부작용

7월 12일, explained

뉴욕타임스가 스포츠부를 없애고 뉴미디어 ‘디 애슬레틱’으로 그 자리를 채운다. 한국 언론도 그렇게 될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뉴욕타임스》가 스포츠 부서를 해체한다. 지난 2022년 1월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The Athletic)’을 5억 5000만 달러(당시 6600억 원)에 인수할 때부터 예고된 수순이었다. 경기와 선수, 팀, 리그 등의 정보를 다루는 기사는 디 애슬레틱에서 주로 제공될 예정이다. 35명의 기존 스포츠부 소속 기자들은 해고 없이 편집국 내 다른 부서로 이동된다. 스포츠가 어떻게 돈, 권력, 문화, 정치와 결부되는지를 다루게 될 예정이라지만 내부 반발은 극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WHY NOW

기술 발전은 미디어를 위협했고 디지털 전환, 유료 구독 모델을 앞세운 《뉴욕타임스》 는 혁신의 교과서였다. 국내 언론들은 앞다퉈 벤치마킹하고자 했고 뒤늦게 전환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디지털 전환과 결부된 언론의 체질 변화다. 언론사엔 생존 전략의 하나지만 독자에겐 보고 읽는 정보의 변화다. 정보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려면 미디어의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디 애슬레틱의 실험

인수부터 말이 많았다. 비싸게 주고 샀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디 애슬레틱은 구독 기반 뉴미디어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2016년, 언론사 경력이 전무한 두 창업자는 자극적 기사와 광고로 무장한 스포츠 미디어에 하이퍼로컬 콘텐츠로 도전장을 낸다. 인기 종목의 유명 팀 중심의 구성이 아닌, 지역과 구단별 전담 기자를 둔 게 주효했다. 응원하는 팀의 입장에서 쓰인 전문 기사에 독자들은 환호했다. 스포츠 미디어의 구조조정은 기회였다. 이들은 스타 기자들을 쓸어담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양보다 질로 승부해 뉴미디어 실험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에서 테크 전문 뉴미디어 ‘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과 닮았다. 그러나 구독자 100만을 달성하자마자 성장의 정체가 찾아왔다.

뉴욕타임스의 실험

디 애슬레틱 창립 2년 전인 2014년 《뉴욕타임스》 에서는 97페이지짜리 ‘혁신 보고서’가 유출됐다. ‘수용자와의 교감’, ‘디지털 퍼스트’가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종이 신문에서 탈피해 디지털 전환을 진행하던 《뉴욕타임스》의 실험은 성공한다. 2022년 말 기준 유료 구독자 수는 955만 명으로 이 중 디지털 전용 구독자가 종이 신문 구독자의 10배 이상이 됐다. 다양한 구독 모델이 필요했던 《뉴욕타임스》와 구독자 확장이 필요했던 디 애슬레틱의 이해관계는 맞아떨어졌다. 《뉴욕타임스》는 각종 제품을 리뷰하는 ‘와이어커터(Wirecutter)’, 요리법을 알려주는 ‘쿠킹(Cooking)’, 낱말 퍼즐 게임인 ‘워들(Wordle)’에 이어 디 애슬레틱을 미디어 번들에 추가했다. ‘구독 왕국’의 탄생이었다.

미디어 제국의 문제

버즈피드(Buzzfeed), 바이스(Vice), 복스(Vox) 등으로 대표되는 3세대 뉴미디어가 휘청이는 가운데 어떻게 《뉴욕타임스》는 건재할 수 있을까? 수익 구조 때문이다. 이들 뉴미디어는 시성비를 겨냥한 리스티클이나 1인칭 ‘몰입 저널리즘’ 등 수용자 중심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엔 일가견이 있었지만 소셜 미디어 플랫폼 광고 모델에의 의존도가 컸다. 질 높은 기사로 페이월을 완성한 《뉴욕타임스》 등 일부 언론이 적자생존할 수 있던 이유다. 문제는 이런 《뉴욕타임스》가 점차 브랜드 가치만 존재하는 거대 미디어 그룹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인 뉴욕타임스길드는 성명서를 내고 이를 ‘보도의 하도급’이라 비판했다. 버즈피드 뉴스 편집장 출신인 벤 스미스는 《뉴욕타임스》의 독점이 야기할 담론의 한계를 우려하는 비평을 낸 바 있다.

규모의 경제

《뉴욕타임스》 소동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한 뉴미디어의 과제를 보여 준다. 수용자 중심의 혁신을 꾀해도 기성 언론의 아성을 넘어서는 데 실패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스포츠부 해체를 단행했지만 디 애슬레틱 역시 편입 과정에서 구조 개편을 감내해야 했다. 혁신을 바라는 기성 언론과 혁신을 이룬 뉴미디어 사이의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규모의 경제를 이룬 포털과 혁신을 외치는 레거시, 뉴미디어의 이해충돌이 된다. 그러나 한국은 이 같은 논의의 출발선상에도 제대로 서지 못했다. 왜일까? 규모의 경제를 이룬 쪽은 저널리즘이 부재하고, 기성 언론은 신뢰받지 못하며 뉴미디어는 견제당하기 때문이다.

혁신 ≠ 생존

연원은 이렇다.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 이후 많은 언론사가 디지털 혁신을 외쳤지만 플랫폼 확장에 그친 게 대부분이다. 대다수 기성 언론은 혁신을 단순히 생존의 문제로 치환했기에 시류를 적의로 대응했다. 가짜 뉴스와 AI 등 범지구적인 의제 이외에 언론이 자주 지적하는 문제로는 포털의 공짜 뉴스가 있다. 수용자가 포털에 몰려드는 이유는 광고가 없고 UI가 깔끔해서다. ‘랭킹 뉴스’ 등에서 제기된 알고리즘의 문제도 최근엔 많은 부분 해소됐다. 각 언론사 섹션의 편집권이 언론사로 넘어왔고 이용자는 원하는 언론사의 뉴스로 대시보드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른바 ‘포털 때리기’는 계속됐다. 매 정권마다 공수를 바꿔가며 규제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혁신 = 독자

이러한 포털 때리기는 양당제 한국 정치와 닮았다. 상대를 공격하면 자신이 선택받으리라는 믿음으로 수용자의 선택지를 줄이고 독자를 나눠 갖기 때문이다. 수용자가 몰리는 곳엔 이유가 있고 독자가 중심에 없는 혁신은 무용하다. 디지털 퍼스트라는 키워드에 가려져 있지만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는 뉴스의 개념, 전달 방식, 조직·인력의 총체적 변화를 말하고 있다. 단순히 플랫폼을 늘리면 독자가 생기는 게 아니라, 플랫폼에 맞춰 수용자를 찾고 개발해야 하며 이 역할을 사업부가 아닌 뉴스룸이 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기성 언론은 유튜브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뉴미디어를 쉽게 비난하지만 무엇이 더 나은 ‘독자 경험’인지는 확언할 수 없다.

한국 언론의 혁신 보고서

디 애슬레틱과 《뉴욕타임스》가 텍스트 기반으로도 유료 구독 왕국을 세울 수 있던 근본적 이유엔 ‘질 높고 수용자에 최적화된 기사’가 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변주 시도가 있었다. 신문사로 한정하면 시각화와 인터랙티브 요소로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보여 준 《한국일보》의 ‘쪽방촌 2부작’ 기사가 대표적이다. 육하원칙으로 대표되는 스트레이트 문법을 탈피하거나 데이터 저널리즘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부분 일회성 프로젝트에 그쳤지만 지속 가능성을 입증하려는 곳도 있다. 2015년부터 디지털 혁신에 뛰어든 《중앙일보》는 지난해 유료화 모델인 ‘더 중앙 플러스’를 출시해 유료 구독자 1만 명을 모았다. 그러나 데일리 기사를 기계처럼 발행해야 하는 조직 문화로 기자들은 압박감에 노출된다.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찍히는 이유다.

IT MATTERS

《뉴욕타임스》가 하루에 생산하는 기사량은 150~200개로 알려져 있다. 이번 사건은 이중 상당 수가 뉴미디어 번들로 외주화될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한 지붕 아래 기성 언론의 전문 기자와 뉴미디어 기자들이 각자의 편집국 아래서 갈등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질 수 있다. 크고 작은 문제를 내포하고는 있지만 기존 스포츠부의 기사와 새 콘텐츠를 평가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언론 지형은 다르지만 《뉴욕타임스》식 혁신 모델을 취하려는 수많은 한국 언론이 마주할 수 있는 미래다.

미디어오늘은 유료화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 언론이 참고할 모델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꼽는다. 《가디언》은 유료화 정책을 시행하진 않았지만 꾸준한 독자와의 소통, 편집과 광고에 있어서의 투명한 접근으로 2021년, 무려 1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 《가디언》을 자주 읽다 보면 기사 하단에 독자 맞춤형으로 제시되는 후원 메시지가 나타나는 걸 경험할 수 있다. “2023년에도 독립 저널리즘에 힘을 보태 주시겠습니까?”와 같은 식이다. 기술 회사와의 협업으로 독자와 광고주 모두에게 적합한 이용자 행동 기반의 광고 서비스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유료화 시도 이전에 권위를 내려놓고 저널리즘의 가치를 설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언론 위기라는 난제를 논할 수 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