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트 모먼트 김성재 디렉터 - 독보적인 공간은 콘텐츠를 중심에 둘 때 탄생한다

이 겨울, 망원동의 주인공 ‘프레젠트 모먼트’의 초대장
프레젠트 모먼트 김성재 디렉터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망원동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2021년부터 망원동 작은 골목 한켠을 지켜온 ‘프레젠트 모먼트’ 앞이었다. 이곳의 성공은 이미 레퍼런스가 되었다.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크리스마스 테마의 소품 숍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하지만 정작 ‘프레젠트 모먼트’는 소품 숍이 아니다. 선물 가게다. 아니, 실은 선물 가게도 아니다. 산타의 비밀창고다. 세상에 없던 공간을 현실로 만든 것은 진심이 담긴, 단단한 세계관이었다. 그 세계관에는 ‘프레젠트 모먼트’가 이 현실 세계에 전하고 싶은 가치가 명확하게 담겨있다. 울지 않는 착한 아이가 아니어도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그곳, ‘프레젠트 모먼트’의 비밀스러운 문을 열어봤다.
입구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이곳의 정체는 무엇인가?

‘프레젠트 모먼트’는 산타의 비밀창고다. 산타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 ‘세상의 모든 빨간 코’들을 위한 공간이다. 산타를 믿는 마음이 없다면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입구를 찾기 어렵다.

산타의 비밀창고로 들어오는 출입구를 21세기 한국에 만들었다.

〈울면 안 돼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라는 캐럴이 있지 않나. 선물을 받으려면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울어도 안 되고 짜증 내도 안 되고 화를 내도 안 된다. 하지만 가끔은 슬프면 울어도 되고 힘들 때는 짜증도 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떼도 써야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감정에 좀 더 집중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착한 아이가 아니어도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인가.

우는 어른들도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그래서 ‘프레젠트 모먼트’가 문을 열었다. 누구라도 문을 열면 산타의 비밀 창고를 탐험할 수 있다. 언제든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이 필요하다면 이곳이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 프레젠트 모먼트

따뜻한 세계관이다. 그리고 이 세계관이 성공했다.

지난 2021년 8월, 가오픈을 했다. 당시에는 예약한 후 방문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한 번 오신 분들이 계속 다시 오셨다.

그만큼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는 건가.

이 공간을 경험하신 뒤, 다른 일행을 데려오는 분들이 많았다. 우리 공간에 숨겨진 이야기를 일행에게 설명해 주시면서 즐거워해 주셨다. 이 경험이 빠르게 공유되었고, 그 속도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그래서 첫 크리스마스부터 정말 많은 분과 함께할 수 있었다.

핵심은 스토리다.

나를 포함한 창업 멤버 둘 다 창작의 영역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프레젠트 모먼트’는 구체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숍 오픈 5개월여 전부터 만화로 연재했다. 이 인스타툰을 통해 ‘산타의 비밀 창고’, ‘메리의 작업실’, 선물을 만드는 ‘팩토리’까지 소개했다.

인스타툰뿐만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도 이야기가 중심이다.

맞다.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 대부분의 품목에 굉장히 상세한 설명이 함께 놓여있다. 예를 들어 인형이라 한다면, 그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인형을 위해 스토리를 만든다는 건가.

그렇다기보다는 그 인형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곳을 거쳐 이곳까지 도착했는지와 같은 이야기 말이다. 아무래도 빈티지 인형을 많이 소개해 드리다 보니 보통 20년에서 길게는 100년까지 세월이 쌓여 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비교하면 인형의 모습도 많이 변해 있다.

인형도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다.
 

그 달라진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정이 느껴진다. 어떤 시간을 거쳐왔는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팀은 ‘교감’한다고 표현하는데, 그 교감을 통해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인형을 고르는 분들께는 입양서도 함께 드린다. 입양서에는 그 친구가 언제 태어났으며 키나 몸무게는 얼마라는 식의 기본적인 정보가 담겨있다.

인형이 아니라 그 인형에 담긴 이야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경험이 되겠다.

모든 인형에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우울한 이야기, 또 모험적인 이야기를 가진 인형도 있다. 사실,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인형과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도 나왔다. 어떻게 받아들여 주실지, 처음엔 조금 걱정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이야기에 공감해 주셨고, 좋아해 주셨다. 예를 들어 요즘 힘이 나질 않아 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인형을 만나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인형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템도 흔치 않은 것들이다.
선정할 때부터 정성이 담긴 물건을 전한다는 생각으로 고르고 있다. 예를 들어 먹을거리의 경우에도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숨겨진 브랜드, 오랜 노하우를 가진 곳의 상품을 중심으로 고른다. 

ⓒ 프레젠트 모먼트

‘프레젠트 모먼트’의 공간은 아이템을 돋보이게 한다는 느낌보다 이 공간 자체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산타의 비밀 창고’에 걸맞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공을 들였다. 가구들의 경우도 대부분 손으로 깎아 만든, 오래된 것들이다. 길게는 300년 넘는 가구도 자리하고 있다.

대체 그런 가구는 어디서 구하나?

공간을 준비할 때 코로나19 관계로 해외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반 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직접 눈에 담고 가구에 담긴 사연도 들었다. 재미있는 사연이 담긴 가구들로 채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가구가 디스플레이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 공간에 담긴 이야기의 일부란 얘기다.

그래서 효율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다. 좀 더 많은 아이템을 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다양하고 독특한 가구가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포인트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쪽에 놓았을 때엔 시선을 많이 받지 못했던 아이템인데, 저쪽의 다른 가구에 놓아보면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고 함께 놓인 이야기에도 더 몰입해 주시는 경우가 있다. 가구의 색, 빛의 방향이나 양,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다양하고 독특한 공간을 만든다.

입구도 효율적이진 않다.

벽돌에 숨겨진 문을 제작하는 것 때문에 오픈이 3개월이나 늦어졌다. 이게 벽돌 모양의 다른 소재가 아니라 정말 벽돌이다. 정말 무겁다. 지탱하기 위한 기둥도 해외에서 특수 제작해서 받아왔고 문 자체를 새롭게 제작해야 했다. 할 수 있다고 나섰다가 포기한 시공 업체만 세 곳이다.

그래도 만드는 데에 성공했고, 이제는 ‘프레젠트 모먼트’의 상징이 되었다.

끝까지 꼭 하고 싶어서 네 번째 업체를 수소문했고, 함께 열심히 논의해서 성공했다.

리테일인데,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를 고집했다는 것은 꽤 큰 모험이다.

처음부터 이 공간을 전략적으로 구성하지는 말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전략적으로 구성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고 효율성을 확보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애당초 생각했던 상상의 공간을 구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도 다른 프로젝트를 할 땐 레퍼런스도 굉장히 많이 참고하고 관련 서적도 많이 읽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능하면 현실에 있는 공간은 참고하지 않으려고 했다.

ⓒ 프레젠트 모먼트
망원동, 그것도 가장 번화한 골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러한 입지도 같은 맥락에서 결정한 것인가?

그렇다. 이른바 ‘망리단길’이 가장 주목받았던 때가 아마 2015년 정도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홍대나 성수와는 달랐다. 그 시기가 지난 이후에도 망원동은 여전히 ‘동네’의 가치를 지켜가고 있다. 작고 예쁜 가게가 꾸준히 이 ‘동네’를 지키고 있고, 이곳의 사람들도 여전히 ‘동네’ 사람들이다. 우리 공간이 위치한 곳은 오래된 카센터 근처다. 무심히 지나치면 있는지도 모를 수밖에 없다. 이곳을 일부러 찾아주셨으면 했다. 동네 한켠에 있는 줄도 모르게 있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어렵게 찾아 문을 여는 순간부터 ‘프레젠트 모먼트’라는 공간 경험의 시작이다.

단단한 세계관을 공간까지 꼼꼼하게 연결해 냈다. 들인 공이 상상 이상이다.

이 공간은 우리가 쉬이 경험할 수 없는 비일상의 공간이다. 아무리 한여름이라 하더라도 이 문만 열면 크리스마스가 펼쳐진다.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보면 이불에만 들어가도 내가 원하는 세상을 펼칠 수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장난감 몇 개만으로도 하루 종일 즐거웠다. 이곳이 그런 공간이었으면 했다. 어린 시절, 나만의 세계가 펼쳐졌던 그 이불 속 같은 공간 말이다.

지금도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매일 기획하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실, 산타의 비밀 창고 말고도 인스타툰을 통해 선보인 ‘메리의 작업실’도 선보이고 싶다. 아직 보여드릴 것이 정말 많다. 서두르지 않고 섬세한 방식으로 전달해 드리고자 한다.

더 많은 공간에서, 더 확장된 경험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일종의 테마파크 같은 곳이 되었으면 한다. 놀이기구는 없지만,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둘러보시면서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말이다. 매장 안에 가득 찬 이야기들을 통해 어디에도 없는 비일상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빨간 코’들이 크리스마스가 필요한 순간, 언제든지 찾아와 크리스마스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신아람 에디터

* 2024년 1월 16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