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대에서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프리낫프리〉 이다혜 편집장
프리랜서를 위한 매거진, 〈프리낫프리〉의 이다혜 편집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프리랜서를 정의해 나간다. 프리랜서란, 사실 경험으로밖에 정의될 수 없는 수수께끼의 존재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에도 ‘자유’가 들어가지만, 사실 그들에게 자유는 가깝고도 멀다. 오늘 일어날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는 있지만, 클라이언트의 피드백 시간은 그의 손에 맡겨져 있다. 노동을 보호해 줘야 하는 제도들은 자유라는 이름 아래 그들을 불안의 시대로 내몬다. 미래의 노동은 프리랜서로 가득할지 모른다. 우리는 그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10년째 프리랜서로 일해왔다. 왜 프리랜서의 삶을 택했나?
‘프리랜서로 일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기보다는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고, 번아웃도 왔었다. 퇴사한 이후에 다시 입사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일이 들어왔다. 일을 맡아 하다 보니 밖에서도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그렇게 어영부영 프리랜서가 됐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감정은 또 다른 문제다. 불안하지는 않았나?
물론 불안했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불안한 상태다. 프리랜서도, 직장인도 모두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 불안의 종류가 조금 다르다. 직장에서의 불안은 당장의 생계, 돈에 대한 불안보다는 ‘이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게 맞나’하는 식이다. 프리랜서는 당장 돈을 버는 문제가 걸려 있는, 조금 더 실존적인 불안이다. (웃음) 대신에 그런 안도감은 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나의 경력과 포트폴리오로 쌓인다는 것. 직장 생활에 비해 프리랜서 생활이 좋은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의 경력과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해서는 성장과 계발이 전제돼야 한다. 프리랜서에게 성장과 계발은 어떤 의미인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떤 직업군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면 올해는 약간 편안하게 지내자는 결심도 가능하다. 프리랜서는 당장 성장하거나 나의 능력을 계발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성장과 계발은 프리랜서의 일에서 아주 기본적인 구성 요소다. 올해는 내가 어떻게 돈을 벌까, 나의 능력을 어떻게 팔까를 고민하고, 또 시도해야 한다. 물론 그 시도 안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프리랜서로서 첫발을 뗄 때 가장 추천하는 경로가 있다면 무엇인가.
나의 경우에는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 프리랜서를 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매주 일했던 동료나 전 회사 대표, 클라이언트 담당자를 한 명씩 만났다.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이 일을 맡겨 줘서 그걸로 4~5년은 먹고 살았던 것 같다. 일할 때 만나 뒀던 인연이 큰 도움이 됐다.
처음부터 프리랜서로 뛰어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다.
아무래도 일을 구할 때 조금 더 부침이 있을 수 있다. 또, 회사생활이라는 게 그렇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크지 않나. 사수가 메일을 보내는 형식이라든지,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 말이다. 회사에서는 직접 경험하며 배워 나갈 수 있는데, 프리랜서는 그런 소프트 스킬에서 매끄럽지 않은 순간들이 올 수 있다. 사실 프리랜서 중에는 처음부터 프리랜서를 해야만 하는 직군들이 있다. 이런 직군들이 소프트 스킬을 잘 배워 나갈 수 있는 창구와 기회도 필요하다.
프리랜서를 위한 매거진 〈프리낫프리〉를 만들고 있다. 〈프리낫프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계기나 순간이 있었나?
당시 복합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내가 과연 프리랜서인지, 그냥 아르바이트생인지에 대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고, 나 자신이 너무 대체 가능한 인력이라는 생각에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다. 게다가 돈을 떼였었다. 260만 원 정도의 미수금이 발생했는데 그 미수금을 받아줄 수 있는 도움 창구가 아무 데도 없더라. 고용노동부에 들어가서 샅샅이 찾아봤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프리랜서는 노동자보다는 사용자에 가깝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쯤 되니까 ‘나만 이런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프리랜서들은 일에서 어떤 경험을 해나가고 있는지,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하는지 등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프리랜서라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본격적으로 탐구해야겠다는 결심에서 〈프리낫프리〉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