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햅틱스 곽기욱 대표 - 제3의 감각을 만드는 사람들

제3의 감각을 만드는 사람들
비햅틱스 곽기욱 대표


스크린 속의, VR 고글 속의 시청각은 이제 너무도 당연해 감각한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과거에는 달랐다. 1800년대 후반의 관객들은 평평한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본다는 힘’을 느꼈고, 유성영화 시기의 관객들은 정보와 음악을 들으며 때로는 스크린보다 먼저 사건의 진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 당연해 보이는 시청각의 벽을 깨고 그 자리에 촉각을 집어 넣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햅틱 수트와 장갑을 만드는 비햅틱스다. 디지털 세계에도 제3의 감각이 들어올 수 있다. 세상에 없던 감각을 창조하는 이들에겐 주어진 롤모델도, 레퍼런스도 없었다.
비햅틱스는 한 마디로 무엇을 하는 기업인가.

시청각 위주로만 발달해 온 디지털 인터페이스에 촉각을 더하려는 기업이다.

왜 촉각인가.

카이스트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햅틱을 연구했다. 당시 아이폰이 인기를 끌면서 터치스크린 휴대폰이 시장에 공급되던 때였다. 터치스크린이 나오니 화면을 만질 뿐 아니라 느끼고 싶다는 종류의 새로운 니즈가 생겼다. 그때부터 이런 욕구는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박사 과정 중에 메타가 오큘러스를 인수하면서 VR 시장이 조금씩 커졌다. VR은 몰입하기 좋은 매체다. 덕분에 똑같지 않은 촉각이라도 비슷하다는 환상을 심기도 더 쉽다. 콘텐츠가 발달하면서 관련한 니즈도 커질 것이라 봤다. VR은 1인칭 시점을 택하기 때문에 뒤나 옆에서 오는 요소를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다. 촉각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다.

웨어러블 햅틱 디바이스의 목표는 현실감 있는 촉각 구현인가?

시청각과 촉각은 조금 다르다. 시청각은 실제 보고 듣는 것, 즉 현실과 흡사하게 구현할 수 있다. 촉각은 아직 멀었다. 책상을 만졌을 때의 감각을 실제로 전달하기에는 아직 기술적 한계가 너무 많다. 비햅틱스가 개발하는 기술의 포커스는 사실적인 촉각 전달이 아니다. 어떻게 마치 현실에서 촉각을 느끼는 것 같은 환상을 줄 것인가다. 조끼나 장갑이 전달하는 촉각 자체는 진동이다. 그러나 이 진동에 시간과 공간감을 부여해 기억과 유사한 정보를 주려 한다.
택트글로브 ©비햅틱스
하드웨어를 만드는 기업인데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훨씬 많다고 들었다.

디스플레이나 스피커는 이미 주어진 표준들이 존재한다. 대부분 이미 주어진 포맷 안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확장할 수 있다. 하드웨어는 그를 잘 구현하기만 하면 된다. 촉각은 다르다. 새로운 시장인 만큼 우리가 처음부터 다 만들어야 했다. 데이터 포맷부터 표준까지 말이다. 이를 어떻게 시청각과 연동할지도 생각해야 했다. 그만큼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시청각 콘텐츠와의 궁합도 중요하다.

그래서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측면도 크다.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과 촉각이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느냐가 단순한 진동을 특정 느낌으로 변환해 준다. 환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게임 제작자와 같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기술이 고도화된다고 해도 콘텐츠 제작자들이 갑자기 모두 촉각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촉각까지 구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쉽게 콘텐츠와 비햅틱스의 기술을 결합할 수 있게끔 하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엔터테인먼트 영역 외에도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철저하게 즐거움, 몰입감의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만약 기술이 고도화해 아프거나 불쾌한 감각까지 전달할 수 있다면 엔터테인먼트 이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햅틱 기기를 정보 전달의 매체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군인, 경찰 훈련 같은 곳에 햅틱 기기가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비햅틱스의 목표는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B2C 시장이다. 소비자와 몰입도 있는 햅틱 기술, 양질의 콘텐츠가 만나는 접점에서 소비자와 소통하려 한다.

VR 기술과의 시너지가 좋다. 개인적인 VR 경험은 어땠나?

2013~2014년 정도였던 것 같다. 확실히 기존에는 못해본 경험,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해본 사람이라면 전부 다 ‘다른 경험이네’라고 말할 것 같다. 기존의 콘텐츠 소비 경험을 모두 제칠 정도가 못 됐다는 게 아직은 시장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원인이라고 본다. 결국 VR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대단한 가능성이 있어서라기보다는 2D보다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콘텐츠에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건 VR보다 실제 종이책을 넘기는 게 더 낫다. 하지만 분명 게임이나 콘텐츠 소비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영역은 VR이 더 나은 경험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없던 것인만큼 개발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너무 많았다. (웃음) 일단 레퍼런스가 없다는 게 큰 장애물이었다. 누가 비슷한 걸 만들었는데, 이런 단점이 있다더라 하면 그 단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개발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나. 그런 대략의 방향조차 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유의미한 레퍼런스가 없었다. 기본적인 구조부터 생각해야 하는 게 처음 마주한 어려움이었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이 있었다. 웨어러블 기기인 만큼 편하게 착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점부터 모터의 내구성까지 생각해야 했다. 생산이 가능하다는 공장을 찾는 데만 해도 엄청난 설득의 과정이 필요했다. 설계하고, 만들고, 보완하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4~5년 정도 겪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도 막막했을 것 같다.

사실 아예 없는 것부터 시작해 본 경험이 많았다. 수업만 해도 수학, 기계, 예술 수업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들었다. 이곳저곳의 경험이 많아 대부분의 개발 과정이 어떻게 굴러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옷을 만들어 본 적은 없더라. 처음에는 봉제를 안 하려고 3M 붕대에 모터를 붙여서 실험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양하게 시도해 봤는데 모두 실패하고 결국 봉제로 돌아왔다. 지름길은 없었다. 엄청나게 많이, 또 자주 하는 수밖에. 부천에 있는 봉제 공장에 일주일에 2~3번씩 오갔다. 그렇게 첫 제품인 택트수트(TactSuit)가 나올 수 있었다.
택트수트 개발 과정 ©비햅틱
최근 애플이 비전프로를 통한 공간 컴퓨팅 개념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다. 햅틱 기술은 공간 컴퓨팅 기술과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공간 컴퓨팅이라는 개념 자체는 모니터의 한계를 깬다는 것에 가깝다. 단순히 요약하자면 모니터가 커졌다는 것, 그리고 우리 주위의 실제 사물까지도 가상의 영역에 가져올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크게 달라질 지점이다. 사람의 손과 몸이 가상의 영역에 함께 있으니 가상 사물과의 인터랙션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더 촉각에 대한 니즈를 느낄 것 같다. 실제 사물과 가상 사물을 모두 경험할 수 있으니, 촉각이 느껴지지 않으면 사실 같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 방향도 촉각이 필요한 쪽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

물론 그 반대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터치스크린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원래는 물리 버튼이 있지 않았나. 버튼이 직접 눌리고, 촉각도 느껴지니 타이핑하기가 훨씬 편했다. 그러다가 터치스크린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버튼감’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햅틱 기술이 발달했다. 터치스크린을 눌러도 진짜 버튼과 같은 감각을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적당한 햅틱, 적당한 버튼감에 적응해 버렸다. 공간 컴퓨팅 시대도 마찬가지로 흐를 수 있다. 촉각이 없는 세상, 촉각을 느끼지 않는 세상에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촉각 구현 기술이 보편화한 시대도 상상할 수 있겠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감각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바뀔 것 같은데. 가상으로 촉각을 느끼는 게 당연한 세계는 어떤 모습일 것이라 예상하나?

사실 사람이 상상을 잘 못 한다.(웃음) 우리가 가상 세계의 시청각을 당연히 즐기듯, 촉각을 즐기는 게 당연한 시대에서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상상하고, 또 만들어 낼지는 잘 예상하지 못하겠다. 물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햅틱 기술을 기반으로, 또 새로운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나갈 것 같다.

CES 2024에서 새로운 택트글로브(TactGlove) 모델을 공개했다. 미래 계획은 무엇인가.

비햅틱스가 꿈꾸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선명하다. 모든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촉각이 함께 전달되는 모습이다.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더라도, VR 게임만이 아닌 콘솔 게임이나 PC 게임을 하더라도 시청각뿐 아니라 촉각이 함께 전달되는 시대를 상상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는 두 개의 감각으로 경험하던 가상 세계가 새로운 감각으로 경험될 수 있다. 가까운 미래고, 또 충분히 큰 시장이다.

김혜림 에디터

* 2024년 1월 30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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