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천치우판 - 미래에 접근하는 가장 도발적인 방법

미래에 접근하는 가장 도발적인 방법
작가 천치우판


기술 기업은 미래를 만든다. SF 작가는 미래를 상상한다. 기술 발전은 기업과 작가 사이 어디쯤에서 시작된다. 만드는 일은 상상하는 일로, 상상한 것은 만드는 행위로 순환한다. 이 기술 발전의 사이클을 모두 경험한 이가 있다. 바로 중국의 SF 작가 천치우판이다. 천치우판은 《웨이스트 타이드(Waste Tide)》로 환경 재앙을, 《AI2041》로 다양한 미래에 사는 인간의 삶을 그렸다. 구체적이고 도발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그에게 인공지능 시대 이후 물었다.
IT 업계에서 근무하다 SF 작가로 커리어를 변경했다. 미래를 만드는 일에서 미래를 상상하는 일로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

IT 업계의 미래 창조는 지금의 기술적 한계와 과학적 이해, 시장의 즉각적인 요구라는 제약에 묶여 있다. 이러한 현실은 때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술 발전이 갖는 더 넓은 의미를 탐구하거나, 그러한 기술 발전이 수반하는 윤리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을 고려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오랫동안 아마추어 작가로 활동했던 나에게 새로운 커리어는 기술 개발이라는 현실적 제약에 얽매이지 않는, 광활한 캔버스가 돼줬다. 기술의 잠재력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만약’이라는 질문 아래 탐구할 수 있었다.

기술 전문가가 아닌 SF 작가가 미래 모습을 예상할 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큰 강점 중 하나는 현재의 한계, 기술적 복잡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분리’인데, 덕분에 기술이 재구성하는 인간의 경험과 사회적 변화, 철학적 질문에 대해 더 폭넓게 탐구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를 고려해 소설을 쓰기 때문에 다학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접근의 내러티브를 통해서 ‘무엇이 변화할 것인가’라는 질문뿐 아니라 ‘왜 변화하고, 또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가’를 함께 물을 수 있다. 미래의 사회정치적, 문화적 토대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웨이스트 타이드(Waste Tide)》는 환경 파괴, 사회 계층, 기술의 윤리적 문제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술은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술은 이중적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를 완화할 수도, 악화할 수도 있다.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손이다. 《웨이스트 타이드》에서는 환경 파괴의 심각한 결과와 무분별한 기술 발전이 낳은 윤리적 딜레마를 살핀다. 기술을 만병통치약으로 바라보기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도구로서 바라보자는 시각이다. 기술의 이러한 잠재력은 근시안적인 경제적 이익, 편리함을 추구하는 접근으로는 실현하기 어렵다. 모든 사회 계층의 복지와 지구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사고방식과 패러다임을 통해야만 할 것이다. 근본적인 시스템의 결함을 해결해야만 기술의 잠재력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창의성과 예술적 표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I와 인간의 협업으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러한 창작물의 가치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돼야 할까?

AI와 인간의 협업은 창작 과정에 완전히 인간적이지도, 기계적이지도 않은 별개의 개체를 도입하는 일이다. 인간과 기계의 파트너십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탄생한 예술은 창의성과 지적 재산권 문제 등, 기존 질서에 의문을 제기한다. 새로운 질서가 생겼으니, 기존의 질서에 대한 재고도 필요하다. 인간의 의도, 장인 정신, 독창성을 우선시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 평가 기준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AI 시대에는 혁신과 상호작용, 생각과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생성형 AI는 최근 인류가 맞닥뜨린 가장 큰 기술적 충격이다. AI와 구분되는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인공지능과 달리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이다. 우리의 결정에는 감정이 얽혀 있다. 어떤 알고리즘도 완벽히 복제할 수 없는, 문화적이고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 뒤섞여 하나의 결정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본질은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이다. 인간은 공감 능력을 토대로, 또 효율성과 논리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의미를 추구한다. 이 지점이 인간과 인공지능을 차별화한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시대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 구분에 기반한다면 우리가 보존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AI2041》 서문에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관한 패러다임을 세심하게 탐구하고자 했다”고 썼다.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전하면 인공지능과 인간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라 보나? 인공지능은 인간의 조력자일까, 동료일까, 혹은 가족과 같은 관계일까? 더 나아가 인공지능은 나 자신과 동일한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AI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대신 기존의 비서와 동료, 가족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역동적 관계가 탄생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형태의 진화를 통해 AI는 인간 존재에 깊숙이 통합될 것이다. AI는 우리의 의식과 미지의 사고, 창의성의 영역으로 가는 다리 역할로서 기능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인지적, 정신적 자아의 연장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는 AI와 단순히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진화하며 공생하는 관계가 된다. 이런 미래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AI처럼, AI가 인간처럼 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본질이 인공지능과 결합했을 때 그것이 어떤 정체성으로 발현할 것인지, 또 그를 통해 인간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확장될 것인지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모방할 수 있을까?

문제의 핵심은 알고리즘과 신경망을 통해 그러한 모방의 가능성이 점차 더 커지고 있다는 것 자체, 또 그것이 갖는 철학적 함의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진정한 인간의 감정과 인공적인 감정 사이의 구분은 모호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이해하고, 연결되고, 공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영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사회 구조 근간으로 스며들어 정체성과 관계, 신뢰에 대한 우리의 이해 자체를 재구성할 것이다. 이런 용감한 신세계에서 인간의 상호 작용은 본질적 물음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이해하고, 복제할 수 있는 시대에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AI2041》 서문에서 “인공지능을 둘러싼 온갖 디스토피아적 고정관념에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썼다. 그동안 인공지능이 포함된 미래에 사람들이 디스토피아적 고정관념을 가져 왔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공지능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서사는 미지의 영역과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뿌리 깊은 두려움에서 비롯한다. 인간은 자신의 우위에 도전하거나 세상을 의심하도록 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기술 발전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던 과거의 선례는 이런 경향을 더욱 증폭시킨다. 산업 혁명과 전기, 인터넷의 발명이 그랬다.

미래는 어떻게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과 디스토피아적 상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두려움을 넘어서려면 AI 능력의 한계, 윤리적 의미에 대한 포괄적 교육과 열린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기술자와 윤리학자, 예술가, 일반 대중이 협업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함으로써 AI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면 추측이 아닌, 현실에 근거한 논의를 끌어낼 수 있다. 처음부터 윤리적 고려 사항과 인간의 가치를 AI 개발 과정에 통합하면서 사람들의 이상과 열망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진화시킬 수도 있겠다. 궁극적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AI가 인간을 대체하거나 약화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AI가 인간의 잠재력을 강화하고 사회적 복지를 증진할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책임감 있는 미래를 구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고 싶은 독자에게 팁을 준다면?

먼저 변화의 유동성을 수용해야 한다. 미래는 멀리 있는 고정된 지점이 아니다. 현재의 행동과 결정, 혁신의 실타래가 엮여 끊임없이 진화하는, 일종의 태피스트리에 가깝다. AI의 진화도 그랬지 않았나. 과학과 기술, 철학, 예술 등 다양한 학문을 폭넓게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미래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 나만의 고유한 렌즈를 갖게 된다. 현재의 흐름을 파악하는 예민한 감수성도 필요할 것이다. 패턴을 식별하고, 트렌드를 추정하고, 그것이 가져올 급진적 변화를 대담하게 상상해 보자.

김혜림 에디터

* 2024년 3월 19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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