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마포 신현오 운영자 - 즐거운 동네 생활을 만드는 새로운 로컬 미디어

즐거운 동네 생활을 만드는 새로운 로컬 미디어
도보마포 신현오 운영자

빠르고 복잡한 도시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선의 선택을 위한 가이드다. 홍대와 망원, 공덕에서 상암까지. 서울에서 가장 젊고 가장 복잡한 동네 마포구에서 길을 헤맨다면 로컬 큐레이터 ‘도보마포(@dobomapo)’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 도보마포는 걷기의 리듬으로 마포구를 이야기한다. 자동차에 타서는 알 수 없는 좁고 구불구불한 마포의 골목을 걷고 누비고 머문다. 장소가 품은 이야기, 사장님의 뚜렷한 취향을 전달하는 도보마포는, 어느새 주민들의 생활 자체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애정 어린 콘텐츠에 수많은 ‘좋아요’가 모이자 마포구 바깥에서도 도보마포를 주목한다. 동네에 대한 애착과 특유의 유머, 브랜딩 감각은 지금의 도보마포를 ‘마포구 대표 로컬 미디어’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5만 명 달성을 앞두고 있다. 준비하는 이벤트가 있나?

1만 명 달성 때는 굿즈, 2만 명 때는 마포능력검정고시 이벤트를 열었다. 지난 6월, 4만 명 달성 후에는 팝업 스토어였다. 팔로워 5만 명을 앞두고 역시 11월에 마포구 서교동에서 로컬 행사를 기획 중이다. 직접 개최하는 건 아니고 플레이어 중 하나로 참여하는데, 지난 팝업보다 규모도 크고 굿즈도 추가로 제작한다.

지난 6월 팝업이, 소위 말해 대박이 났다.

덕분에 새로운 기점이 됐다. 신수동 카페 ‘도덕과 규범’에서 ‘(도)보부스토어’라는 이름으로, 마포구를 대표하는 네 곳의 브랜드와 협업했던 행사다. 계정을 시작하고 1년 반 동안은 마포를 소개하고 알리는 데 집중했다. 지금은 확장의 시기다. 오프라인 팝업은 로컬을 소개하는 크리에이터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도전이자 선포였다.

2023년 6월에 진행한 팝업 (도)보부스토어 현장 © 도보마포
도보마포의 정체성이 확실해지는 과정 같다.

개인 인플루언서였다면 하기 어려운 플레이다. 도보마포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도보마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마포구의 여러 가게, 가게에 얽힌 이야기와 분위기를 소개한다. 그렇지만 맛집 계정이나 인플루언서 계정은 아니다. 지향은 마포구의 모든 정보를 알리는 정보통이다. 그러려면 개인의 정체성을 내세우기보단 브랜드로서 존재해야 한다. 간혹 인터뷰로 얼굴이 노출되고는 있지만 최대한 계정에서는 개인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개인이 드러나진 않지만, 글에는 개성이 넘친다.

실제 성격과 도보마포의 페르소나는 굉장히 다르다. 화자는 존재하지만, 그게 한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큰 미션이다. 리테일 영역에서 같은 브랜드여도 29cm의 소개와 무신사의 소개는 다르다. 이런 것처럼 편집력 있는 브랜드로서 존재하고 싶다. 그 콘셉트는 드립을 가미한 장난기 많은 캐릭터다. 예능 PD가 꿈이었는데, 못다 핀 꿈을 도보마포로 풀어내고 있다.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인가?

엄청 많이 한다. 유행했던 드라마 〈카지노〉나 〈더글로리〉 등 대사를 휴대폰 메모장에 빼곡히 적어두고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곤 한다. 최근 〈무빙〉이 인기도 명대사도 많은데, 이런 콘텐츠가 나와 주면 매일 ‘드립’을 고민하는 나로선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일본의 월간 패션 잡지 《뽀빠이》 매거진 2023년 7월호 ‘SEOUL CITY GUIDE’에 소개된 도보마포 © 도보마포 제공
《뽀빠이》 매거진에 소개된 이후 신한카드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이전에도 브랜드 협업 콘텐츠는 진행했는데, 《뽀빠이》가 새로운 트리거가 된 것 같다. 《뽀빠이》가 서울의 다양한 동네별 특징을 다루려고 기획하다가 도보마포를 알게 되었다며 연락이 왔다. 도보마포에게는 ‘도보’로 ‘마포’를 걸어 다닌다는 뚜렷한 콘셉트가 있다. 그 콘셉트를 푸는 방식에 있어서 담백한 사진이 주효했다. 기존의 맛집 계정 사진들을 보면 대비가 높고 글자가 많지 않나. 자극과 피로함보다는 눈에 편안함을 주고 싶었다. 대신 포인트는 두 줄의 카피, 진정성 있는 이야기다. 외부에서 연락을 받을 때는 그런 룩이 좋다는 말을 듣곤 한다. 편집 방식 덕에 개인보다는 매거진 혹은 브랜드로 인식되는 듯하다.

기아자동차와의 컬래버레이션은 도보라는 콘셉트를 깬 것 아닐까?

처음엔 거절했었다. 걷기와 자동차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런데 도보마포의 콘셉트를 살려, 경차로 마포의 좁은 골목을 다니는 걸로 풀어 보면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은 ‘골목의 도시’이고 마포는 그 골목 문화가 잘 살아 있는 곳이다. 새로운 콘셉트하에 경차를 이용해서 콘텐츠를 풀어 봤더니, 정성적인 평가가 좋았다. 의외로 잘 붙는다는 반응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로컬 브랜드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실험이기도 했다.
기아자동차 협업 콘텐츠 © 도보마포 제공
사이즈가 커졌다. 본업 외에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기에는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나?

처음 시작할 때 1년 동안 꾸준히 한다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꾸준하려면 가벼워야 하니까 하루에 한 시간만 투자했다. 주말엔 좀 더 시간을 쓰더라도 평일엔 여전히 한 시간이다. 출퇴근 길에 모바일로 습관처럼 쓰는, 그 한 시간이 꾸준함의 장치다.

여전히 스트레스가 없나?

그렇다. 힘들 때는 안 한다. (웃음) 혼자 운영하는 거니까. 책임감은 있지만 부담감은 없는 상태다.

하루에 하나씩 꾸준히 올리면 통할 거라는 건 알았나?

본업이 브랜드 마케터라서 전략적으로 알기는 했다. 네이버 블로그든 인스타그램이든, 잘 되는 계정을 보면 초반 업로드가 꾸준하다. 어느 정도 하면 궤도에 오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포구에서 30년을 넘게 살다 보니 머릿속에 쌓아 둔 콘텐츠가 이미 많기도 했다.

나만 알고 간직할 수도 있는 정보들이다. 왜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스무 살 대학에 진학했을 때 내 포지션은 ‘홍대에서 온 애’였다. 한창 홍대 앞 문화가 흥할 때다 보니 특별하게 인식된 게 있다. 거기에 더해 동네에 대한 애정은 원래 있었으니까, 좋아하는 곳들은 항상 메모장에 정리해 두었다. 중요한 소개팅이나 약속이 있는 친구들에게 인원수, 테이블 간격, 음악 크기 등을 따지며 1차 2차 코스를 추천해 주는 건 일상이었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좀 더 퍼블릭하게 풀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마포에 발을 딛고 평생 살아왔으니 같은 말을 해도 진정성 있을 거란 확신도 있었고. 최근 합정에 있는 ‘콩청대’라는 밥집을 소개했다. 옛날부터 좋아하던 곳을 올린 건데, 댓글 반응이 재밌다. ‘여기 올라오면 안 되는데’, ‘올라올 게 올라왔다’ 이런 반응이다. 주민들이 마음속에 간직하던 공간을 소개하다 보니 공감을 얻으면서 힘이 실린 것 같다.

뿌듯한 반응이었겠다.

오랜만에 하나 터졌단 느낌. (웃음) 힙하고 트렌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조그마한 밥집이 뭐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고 공감할까 싶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다. 도보마포 계정에 올라오는 가게는 그렇게 자기만의 무기가 있는 곳들이다.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도 마포에 모여 있어서 그 색깔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가게의 스토리를 풀어내려면 사장님과도 대화해야 할 텐데, 구체적인 방법이 있나?

도보마포는 맛집 소개 계정이 아니니까 단순히 맛있다, 좋다는 표현보다는 사장님의 히스토리나 가게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로 접근한다. 먼저 도보마포인 걸 알리진 않고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한다. 잘 먹었다는 말과 함께 언제 생겼는지, 왜 이 장소로 오게 되었는지 여쭤본다. ‘고미태’라는 식당 이름이 사장님의 별명에서 나왔다든가, ‘연희동국화빵’이 어쩌다 시작하게 되었는지 같은 건 그런 은밀한 인터뷰를 통해 얻어낸 스토리다.

도보마포가 관찰한 마포의 특별한 점이 궁금하다.

주인 의식,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유행과 트렌드보다는 자기만의 콘셉트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홍대병’이라고도 하지 않나. 자기만의 리스트 업을 짜놓고 그 안에서 디깅하는 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스리슬쩍 자기 취향을 알리고도 싶고. 콩청대 포스트에 달린 댓글이 딱 마포를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여기 올라오면 안 되는데’를 뒤집어 말하면 ‘나도 원래 여기 알고 있어’거든.

‘도프라인’이라는 모임으로 구독자들과 만나기도 했다. 실제 마포 주민들도 그랬나?

가설이 들어맞았다. 보통 샤이(shy)하고 벽이 높은데,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에는 수많은 별표를 찍어 두고. 도보마포의 타깃은 이런 동네 주민들이다. 포스트를 작성할 때도 마지막 체크리스트는 ‘주민들에게 편안한 곳인가’이다. 세수 안 하고 모자 쓰고 슬리퍼 끌고, 동네 사랑방처럼 갈 수 있는 단골집이 될 만한 곳을 소개하고 싶다.

도보마포가 마포구민을 닮았나 보다.

정말 그렇고, 계속 마포의 특별한 분위기를 담아내고 싶다. 마포구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콘텐츠의 톤과 지속성을 만든다. 도보마포처럼 로컬 큐레이터를 하고 싶다는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곤 한다. 콘텐츠를 잘 살려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동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좋아하는가라는 물음이 필요하다. 이웃들과 관계를 맺는 이유, 꾸준히 정보를 공유하려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마포구에 대한 애착이다.

애정이 브랜드가 된 셈이다.

도보마포는 마포의 대표 로컬 미디어가 되는 게 목표다. 지금은 공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공간 외에도 마포 주민들과 함께 알면 좋은 정보를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 가령 장마 시에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지금 마포에 어떤 소식이 있는지 등. 중립성 있는 정보를 잘 전달하는 로컬 미디어가 되고 싶다는 큰 비전이 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나?

도보마포의 브랜드를 더 확장할 계획이다. 팝업을 하거나 굿즈를 만들거나 브랜드 간에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로컬을 소개하는 계정으로서 끝까지 가보고 싶다. 도보마포가 진화를 거듭할수록 마포구의 생활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백승민 에디터

* 2023년 9월 12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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