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모멘트 박창선 대표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을 브랜딩에 쓴다면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을 브랜딩에 쓴다면
애프터모멘트 박창선 대표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 달라.

애프터모멘트라는 회사를 운영한다. ‘대충 말해도 제대로 알아듣는 디자인 회사’라는 모토 아래, 멋진 회사 소개서와 홈페이지 텍스트를 만든다. 한마디로 누군가를 소개하는 일이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브랜딩 좀 해보자고 말했다》,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 등의 책을 썼다.

‘대충 말해도 제대로 알아듣는 디자인 회사’는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생각해 낸 표현은 아니고 고객사 대표님들이 해 준 말이다. “대충 말해도 박 대표는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는다”고 많이 말씀하신다. 대학을 1년 만에 자퇴하고 판매·영업직, 콜센터, 시장 등에서 일했다. 디자인은 서른 살에 독학으로 시작했다. 포트폴리오로 디자인 전공자를 이길 수 없었다. 이 일을 한 지 7년쯤 됐는데 초반 4년은 돈을 못 벌었다. 연 매출이 200만 원도 안 나올 때가 있었다. 고객 업체 대표들에게 나의 장점이 뭔지 물어봤다. 내용 정리를 잘한다, 원하는 게 뭔지 잘 알아듣는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애프터모멘트 소개에도 “글을 잘 씁니다”, “읽히는 메시지를 만듭니다”라고 강조했더라.

우리가 만드는 회사 소개서는 크게 세 가지다. 제휴, 사업 제안, 거래 등을 위한 B2B용과 SNS 등에 활용하는 소비자용이 있다. IR, 주주 총회, 투자 제안서 등에 회사의 스토리와 수치를 얹는 일도 한다. 소개서는 물건을 팔기 위한 도구다. 회사가 내부적으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와 소비자가 그걸 알아주는 것은 별개 문제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소개하면 팔리지 않고, 그러면 회사는 움직일 수가 없다. 매우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회사 소개서를 통해 돈 벌리는 얘기를 한다.

고객이 담고 싶은 내용과 박 대표의 관점 사이에 충돌점이 있을 텐데.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고객사가 쓰고 싶은 언어로 ‘포장’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표현’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땐 소비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게 맞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 소비자는 나에게 일을 맡기는 고객이다. 그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면서 소비자만 외칠 수는 없다. 그래서 소비자를 51, 고객을 49로 놓고 일한다. 가야 할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고객의 의견을 받아들여 방법을 찾는 편이다.

그런 작업을 ‘브랜딩’이라고 부르는 건가?

브랜딩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나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하다 보면 선택의 순간이 엄청 많은데 선택해야 하는 이유, 그 기준을 잡는 게 브랜딩이다. 브랜딩은 내적 기준과 외적 기준으로 나뉜다. 내부 조직의 다짐, 전략, 마인드, 문화 같은 게 있을 테고, 외부에 내놓는 제품과 서비스가 있다. 제품, 서비스를 가지고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도 포함되는데 애프터모멘트는 이 끝단의 일을 한다. 지난 수년간 사업을 하면서 ‘브랜딩 한다’고 얘기했는데 지난해부터는 이 단어를 쓰지 않기로 했다.

어째서인가?
사업 초기에는 직원 5명과 함께 했지만, 지금은 혼자 일한다. 1인 기업이 광범위한 브랜딩을 다 다루는 게 어불성설 같아서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잘하는 건 고객의 언어를 다루는 일이다. 회사 소개서와 홈페이지 속에 거창하게 늘어놓고 싶은 언어를, 읽힐 수 있는 분량과 표현으로 만들어 낸다.

읽히는 메시지는 어떻게 만들 수 있나?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는 소비자가 듣고 싶은 얘기인가. 팔고 싶은 사람의 언어가 아닌 물건을 사려는 사람의 언어를 재료로 쓴다. 두 번째는 톤 앤 매너다. 소비자와 우리를 어떤 관계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톤 앤 매너가 굉장히 달라진다. 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술 먹는 친구, 고민 상담하는 친구, 연애 상담하는 친구가 있는데 우리가 다 같은 말투를 쓰지 않는다. 메시지를 읽는 사람의 연령, 성별보다 훨씬 범위를 좁혀야 한다. 마지막은 글의 리듬감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브랜딩과 디자인은 어떻게 결합하나?

디자인과 글을 떼서 생각할 수 있나? 디자인 오더를 그림으로 해 본 적이 있나? 보통은 말과 글로 한다.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는 동일하지만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고객이 더 흥분하면서 말한 내용, 악센트가 찍힌 단어, 속도가 빨라진 구간 같은 걸 캐치한 뒤 디자인으로 번역할 때는 배치, 면적, 폰트 크기 등으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1인 기업이라 바쁠 텐데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쓴다.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내 불안과 인정 욕구 때문이다. 소개서를 의뢰하는 고객이 여러 생각을 펼쳐  놓는데 그걸 깔끔하게 열 문장으로 압축하면 희열을 느낀다. 고객이 좋아하면 기분은 더 좋아진다. 또 글을 쓰면 매출로 이어진다. 명확하지 않은가. 스트레스 받으면 글을 쓰면서 푼다. 브런치에 쓰는 건 굉장히 가볍고 쉬운 글인데 최근에 딜레마가 좀 있다. 글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정규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강박감이 있다. 디자인도 그 열등감을 떨쳐 내기가 정말 힘들었다.

정규 과정 없이 책을 썼지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브랜딩 좀 해보자고 말했다》에서 말한 ‘면접장의 브랜딩’이 인상 깊더라.

브랜드가 잘 구축된 최상의 단계에 있을 때 소비자가 하는 말이 있다. “저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  소비자가 아니라 회사 안에서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런데 실제 면접을 보러 가면 관련한 소통에서 상처받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많게는 수백 명, 수천 명에 이르는 지원자 대부분은 한 번만 왔다가 돌아가는 입장이다. 돌아가면 다시 소비자가 된다. 그리고 면접 과정에서의 경험을 주위에 공유한다.

실망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건가?

“실제로 가서 보니 포장일 뿐이었구나.” 그 괴리에서 오는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 회사를 정말 사랑했던 사람들을 통째로 잃게 된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인격적 말투, 친절한 안내, 불합격 통보 방법에 대한 사전 공지까지 모든 것이 브랜딩이다. 그 자체가 소비자, 함께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디자인 브랜딩의 화두는 무엇일까?

해마다 트렌드가 확확 바뀌진 않겠지만 앞으로 나갈 방향성은 분명하다. 환경과 접근성, PC(Political Correctness)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디자인도 환경을 해치지 않고 보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가급적 인쇄물을 만들지 않으려 하고 필요하면 친환경 용지를 쓴다. 폰트도 에코 폰트를 쓰려고 한다.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해서 다크 모드가 가능한 작업은 그렇게 만든다. 접근성은 노인, 색약자 등 콘텐츠 취약 계층에 관련된 이슈다. 장모님이 영어를 전혀 못 하시는데 미술관 안내 등 영어가 많고, 키오스크 사용도 난감해하신다. 접근성을 생각하지 않은 디자인은 굉장히 위험하다. 포장에 가깝다.

특정 집단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고객사 대부분이 중소기업인데 여성 브랜드는 꼭 분홍색을 쓰고 싶다는 사장님이 아직도 많다.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색깔, 픽토그램 사용 등에 성차별, 인종 차별, 고정 관념이 반영되지는 않았는지 고려해야 한다.

일과 삶에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일적으로는 소개하고 싶고 소개받아 마땅한 브랜드와 작업하고 싶다. 최근에 영화 〈소울〉을 봤는데 인생의 목적이 굳이 있어야 하냐는 메시지를 담았더라. 항상 삶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건 사회적으로 디자인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냥 와이프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다.

지금, 깊이 읽어야 할 콘텐츠를 추천해 달라.

‘깊이’라는 단어가 와닿는다. 일기, 낙서, 페이스북 글 뭐든 기록을 남길 텐데 본인이 쓴 콘텐츠를 다시 한번 읽어 봤으면 좋겠다. 없으면 만들고, 만들었으면 깊이 읽어 봤으면 한다. 그 어느 것보다 영감을 주는 건 내가 예전에 썼던 글이다. 약간의 ‘이불킥’과 ‘오글거림’이 따르겠지만, 과거에 나는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떻게 변해 왔는지. 당시 시대는 어땠고, 거기에서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이 생각은 나에게서 나왔는지 아니면 외부로부터 온 건지 등을 깊이 읽어 봤으면 한다.

이경진 에디터

* 2021년 1월 28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젊은 혁신가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