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역우정국 김선형 대표 - 문화예술 플랫폼의 지속성에 관하여

문화예술 플랫폼의 지속성에 관하여
탈영역우정국 김선형 대표
@ujeongguk



탈영역우정국을 한마디로 소개해달라.

예술의 탈 장르와 탈 매체라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문화 예술 플랫폼이다.

공간이 아닌 플랫폼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생 공간이나 대안 공간처럼 여러 가지 복합 문화 공간을 지칭하는 다른 말은 있다.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말은 문화예술 플랫폼이다. 플랫폼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탈영역우정국은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서 기존에 우체국이었던 곳을 임대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구)창전동 우체국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며 공간을 문화 예술 플랫폼으로 탈바꿈했다. 업사이클의 계기가 있을까?

사실 유휴 공간을 활용해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있었다. 다만 업사이클이라는 말 자체는 오히려 이후에 나온 것 같다. 이런 것이 새로운 시도도 사실 아니고, 외국에도 발전소나 공장 등 다른 용도로 쓰였던 곳을 문화예술의 장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그래서 사실 업사이클이라는 표현에 부합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원래부터 기존의 용도를 다른 것으로 활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우체국을 선택했을 때도 용도에 대한 의미를 많이 생각했다.
©신병곤
우정국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 인상적이다. 우체국이라는 것이 플랫폼의 방향성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나?

외관에 있어서 특정 시대의 우체국 건축양식을 보여주었다. 기능적으로 우체국 업무를 본다는 것 자체가 편지를 보낸다거나 소포를 보낸 다거나 아니면 어떤 소식, 메시지를 주고받는 소통에 기인했던 장소성이 있지 않나. 사람들이 이렇게 만나서 대화하는 것도 있지만, 작품을 선보이고, 공연을 하고, 미술 전시를 하고 이런 것 자체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데 있어서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정국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 왔다.

그렇다면 탈영역(Post Territory)은 어떤 의미인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탈영역우정국에서 ‘우정국’이라는 것은 우체국이었던 이곳의 장소성에 기인해서 먼저 정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우리가 펼치고자 하는 것, 일종의 매니페스토(Manifesto)를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탈’이라는 말. 그러니까 포스트 모더니즘, 포스트 COVID, 이렇게 사용되는 그 포스트(Post)와, 그리고 여기가 ‘Post Office’였지 않나. 그래서 포스트라는 단어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한 ‘탈’이라는 말과 함께 ‘영역’을 붙여 ‘탈영역’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어떤 개념적이거나 공간적인 것을 벗어나 탈 장르적, 탈 매체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탈영역이라는 말 속에 뭔가로 규정하는 것을 벗어나겠다는 의도가 잘 드러난다.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소화하는 것을 보면 일종의 유기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직관적인 단어와 속성의 규정을 피함으로써 활동에 어떤 이점이 있었나?

정확하게 본 것 같다. 처음 그 이름을 지을 때 친구들과 얘기하며,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 무슨 공연장, 미술관 등의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다는 전제하에 이름을 지었다. 기존에 이렇게 불리는 공간의 이미지를 탈피해야만 내가 추구하는 탈 매체, 탈 장르를 실험적으로, 실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다. 이를 피하고자 한 덕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이 작품에 대한 가능성을 더 열어두었던 것 같다. 일반적인 전시장에서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작품 행위보다 예술의 형식이나 주제 면에서 실험할 기회가 더 열려있었다고 생각한다.
〈RTA 2019〉, 서드타임 ©신병곤
유장우,〈구분할 수 있는, 분간할 수 없는〉, 2021 ©정호윤, 김태리
혹시 단점은 없었나?

어떤 분들은 간혹 이름이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정국이라는 단어도 지금은 쓰이지 않는 단어이다 보니, 탈영역 ‘우체국’이라던지 그냥 ‘탈영역’이라고만 부르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탈영역을 우리가 의도한대로 읽지 않는 분들도 꽤 있었다. 역을 ‘Station’이라고 생각하셔서 탈영, 역. 그래서 탈영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계신 경우도 있더라.(웃음)

예전에는 POST-SIDE라는 워크숍을 여러 번 열기도 했다. 전시 이상으로 예술가들의 커뮤니티 형성이나 연대를 강조하는 느낌이 있는데.

커뮤니티 형성을 하려고 해도 그게 쉽지는 않다. 물론 그런 시도를 하고는 있지만, 연대를 주창하는 것은 아니다. 워크숍의 경우, 그보다는 뭔가 예술가들의 일상과 활동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기존에 전시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예술가들의 실질적인 활동과 그들의 일상, 작업이 사실 모두 연결이 되어 있다는 점과 작품 그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연대라기보단 그러한 영향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었다.

색다른 시도인 것 같다.

사실 처음 기획할 때, 작업만 하기에는 삶을 운영하기 어려워 일도 하게 되고, 이런저런 여가와 취미 활동이 생기며 그런 관심사들이 작업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작업이 관심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전시 공간에는 작가들의 작업만 전시가 되지만, 그들 삶의 다른 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POST SIDE 2017 ©신병곤
이곳을 찾는 예술가들에게 탈영역우정국은 어떤 곳인가?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이곳은 섬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건물이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고, 큰 도로에서도 한 꺼풀 들어와야 보인다. 홍대 근처라 물리적으로 가깝기는 하지만, 주소를 말했을 때 단번에 인지하긴 어려운, 홍대 상권에서 뭔가 좀 우두커니 떨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이 배처럼 보이기도 하고 섬 같기도 하고. 게다가 미술 씬 안에서 어떤 기득권도 없이 운영하다 보니, 기득권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섬 같은 사람들이 모여 우정국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탈영역우정국은 지속 가능한 민간 문화 예술 사업 모델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인가?

어느 정도 해나가고 있지만, 이상에 가깝다. 이곳에서의 활동만으로 잘 선순환이 되면서 플랫폼을 지속 운영할 수 있는 모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2015년에 귀국할 때쯤에 신생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곳이 오픈했었다. 그때는 마치 그런 신생 공간을 찾아서 전시 공간으로 만들고 다양한 작업을 보여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쪽에서 트렌드처럼 자리 잡았다. 그런데 사실 1, 2년, 길게는 3년 정도 안에 많은 곳이 문을 닫았다. 지속할 수 있는 구조가 내부에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임대를 수반하기 때문에 계속 비용이 나가게 된다. 이런 활동이 사회적인 기준에서 보면 이윤을 창출하는 생산적인 행위는 아니지 않나. 그렇지만 예술의 행위는 계속 이루어져 왔고, 내보일 공간은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결국 공간 운영을 지속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공연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료 전시이고 매우 실험적인 기획들이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데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 내부에서 이뤄지는 것으로만 지탱할 수는 없다. 그래서 외부 기관이나 외주 사업 들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이곳이 운영될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실 처음 개국할 때는 워크숍을 자주 진행해서 그 수익을 통해 전시와 공연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외부의 일을 받아서 하는 게 아무래도 눈앞에 더 보이더라. 기존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했던 것을 바탕으로 디자인이나 영상, 기획 등의 일을, 함께 일하는 스텝과 도맡아서 한다. 그리고 어떤 (문화 예술 사업 등을 통한) 기금을 받고 하는 작업의 경우, 그 기금에서 대관료를 우리에게 지출하고 우리는 협력 대관이라는 형식으로 그 행사를 같이 진행하기도 한다.
〈RTA 2019〉, 유장우 ©신병곤
일반적으로 사업적인 측면에서 대관을 진행하는 전시 공간은 많은데, 어떠한 차별점이 있나?

사실 우리도 대관이 많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대한 결이 우리와 맞는지, 우리가 생각하는 기조와 맞는지에 대한 검토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탈영역우정국의 성격을 만들어낸다. 물론 대관이 운영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대관으로 생계까지 아우르는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지금의 탈영역우정국의 색을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고 여기에 있는 여러 기획자분과 작가님들과 만들었다고 한 이유는, 위와 같은 고민과 검토를 함께 해나가기 때문이다. 내가 플랫폼을 운영함으로써 일종의 장(場)을 마련하고 주제가 될 만한 것을 제시한다면, 실제 탈영역우정국의 모든 기획과 활동은, 여기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다.

최대 임대 기간이 10년까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개국으로부터 5년이 지났고 계속 지속이 된다면 앞으로 5년이 남은 셈인데, 남은 기간 안에 이루거나 보여주고 싶은 게 있을까?

개국할 때부터 하고자 했던 프로젝트가 여러 가지 있었다. 다른 외부 사업 때문에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던 것들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작업 중 예술 유통과 연결 짓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든 그런 작업을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조그맣게라도 만들고자 하는 생각에, 건물 옆 공간을 쇼룸처럼 만드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그리고 지하에 조그만 공간이 있는데, 실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작가들에게 공간 지원을 하려고 한다. 위층(1층)에 바로 메인 전시 공간이 있어서,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와 작업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구상한 ‘지하도 프로젝트’가 있다. 플랫폼으로서, 오프라인에서 보여주는 것 말고 온라인이나 다른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에 대한 고민도 계속 하고 있다.

탈영역우정국 이후 리니어콜렉티브의 다음 프로젝트는 무엇이 될까?

자주 어떤 것에 꽂히는 편인데, 최근 멀지 않은 곳에 경찰서였던 곳이 매각 나온 것을 봤다. 요즘에 다들 ESG, 지구, 환경에 관심이 높지 않나. 나 역시 관심을 두고 지켜봐 온 주제이기도 하다. 사실 전시를 하다 보면 철거를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과 재료가 많아 소비적인 면이 있는데, 이런 것들에 회의가 들기도 했고. 그래서 ‘지구지구대’라는 이름으로 파출소를(웃음) 탈영역우정국과 같이 만들어볼까 생각했다.
 
(웃음) 이름을 정말 잘 짓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파출소. 앞서 말했듯 여기가 소통에 기인한 장소성이 있다면, 지구대라는 곳은 치안이나 보호와 관련이 있고 무언가 안정을 주는 역할이 있지 않나. 그래서 환경 이슈를 담을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파출소였던 곳을 열심히 알아봤다. 특히 요즘과 같은 시점에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체적으로 계획 중이다.

앞으로 도시가 아닌 곳에서도 지속 가능에 대한 실험을 해보자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선 재정적인 지속 가능성을 위해 외부 사업과 내부 운영을 겸하고 있지만, 거기서의 지속 가능성은 레지던시 베이스 혹은 워크숍 베이스를 해볼 수도 있다. 지구지구대도 그런 방식으로 운영을 해보려고 한다. 지구대라는 말에 ‘파출소’의 뜻도 있지만 무슨 ‘특공대’처럼 ‘Group of People’이라는 의미도 있지 않나. 이를 파출소라는 장소성과 연결한 지구지구대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이현구 에디터

* 2021년 9월 7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