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홀 김천성 대표 - 음악과 사람을 이어 주는 공간

음악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
롤링홀 김천성 대표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 같다.

그동안 IMF부터 세월호, 메르스 등 수많은 난관을 버텼지만, 이런 어려움은 정말 처음 겪는다. 정말 2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시작했을 때가 롤링홀 25주년 기념 공연 시기였는데, 볼빨간 사춘기랑 적재가 초반에 공연을 조금 하다가 결국 공연을 접었다. 그 뒤로 1년간은 거의 공연을 열 수 없었고 지금도 정상적인 운영은 힘든 상황이다.

언제부터 공연업을 했나?

1995년부터 신촌에 있던 라이브 클럽 ‘롤링스톤즈’를 운영했다. 그때는 시나위, 블랙홀, 블랙 신드롬, 사하라, 윤도현 밴드 같은 팀이 공연했다. 당시 대학로를 중심으로 소극장 문화가 활성화됐는데, 홍대 쪽에는 음악 전문 소극장이 없었다. 2004년도에 지금 장소로 이전했고, 그때 롤링홀로 이름을 바꿔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롤링홀은 대중 가수도 공연하지만 인디 뮤지션이 성장하기 위해서 한 번쯤 거치고 가는 공간이다.

홍대에서 1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지역에 롤링홀보다 오래된 공연장이 있는가.

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인디 1세대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분은 서교동 쪽에 라이브 클럽 ‘빵’의 대표님이 있다. 인디 신을 대표하던 공연장 ‘드럭’도 없어졌고, 1세대 중에는 그분하고 나하고 둘이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 시기 동안 많은 홍대 공연장이 문을 닫았다.

코로나로 문 닫은 안타까운 공연장이 많다. ‘퀸’이라는 공연장이 있는데, 작년이 20주년이었다. 그 공연장도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없어졌다. 소극장 ‘브이홀’은 나름 우리와 선의의 경쟁을 하던 공연장이었는데 코로나로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문을 닫았다.

공연장이 사라지는 것은 인디 커뮤니티에 심각한 위협인 것 같다.

요즘은 인디 생태계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이 된다. 공연장이 사라진다는 건 뮤지션이 활동하는 토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라이브형 뮤지션들 대부분이 콘서트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 뮤지션들이 견디지 못하고 음악을 그만두고 있다. 뮤지션이 있어야 공연장도 존재할 수 있다. 뮤지션이 줄어들면 코로나가 끝나도 새로 공연장이 열릴 수 없는 구조가 된다. 물론 이런 상황이 언젠가는 회복되겠지만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인디 신에서 소극장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토대이자 자양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1년에 100회 이상은 무조건 기획공연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기획공연을 많이 하는 이유는 실력 있는 뮤지션, 신인들을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인이 여기서 공연을 하면 처음에는 관객이 몇 명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중 어떤 팀은 정말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그러면 우리 회사에서 전국투어를 잡아주기도 하고 꾸준히 무대에 설 기회를 만들어준다. 그런 팀 중에 나중에 큰 아티스트가 된, 잘 된 뮤지션이 많다. 실력 있는 뮤지션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 그게 소극장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대관 사업보다 기획공연 중심으로 공연장을 운영하는 건 인디 신에 대한 애정이나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인가?

물론 애정도 있다. 1세대로서 인디 신의 성장과 하락을 모두 봐왔고, 아티스트가 신인 때부터 성장하고, 그들의 음악이 세상에 알려지고, 어떤 팀이 인기가 떨어지는 과정 등을 수없이 봐 온 사람으로서 나름 사명감을 갖고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사명감 없이 소극장을 운영할 수는 없다. 일단 수익적으로도 소극장 운영으로 큰돈을 벌기 힘들다. 소극장이 돈이 된다고 하면 지금 홍대에 소극장이 엄청 많았을 거다. 실력 있는 아티스트를 키운다는 보람, 내가 대중음악 분야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이 없다면 이 일을 오래 꾸준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롤링홀은 인디 뮤지션이 믿고 공연하는 장소가 되었다. 본인만의 운영 원칙이나 방침이 있나?

나는 공연장 운영에서 아티스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티스트가 없으면 극장의 존재 이유도 없다. 아티스트와 함께 간다는 마인드가 있어야 공연업을 오래 할 수 있다. 나도 오랜 세월 뮤지션들과 친분을 맺으며 지내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연장을 운영하는 방식이 계속 바뀌었다. 1년에 몇 회 이상 대관하지 않고, 몇 회는 반드시 기획공연으로 가야 하고, 이런 방침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식으로 뮤지션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다 보니까 지금은 홍대 소극장 중에 그래도 제일 공연을 많이 하는 곳이 된 것 같다.

될성부른 뮤지션을 보는 감각이 남다를 것 같다. 매니지먼트사에서 뮤지션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지 않나?

전에는 감이 좋았는데, 지금은 많이 떨어졌다. (웃음) 아는 기획사 대표들에게 “이 친구 정말 괜찮은데, 와서 공연 한번 봐요.”라고 하면서 중간에서 연결하는 일을 많이 했었다. 롤링홀이라는 공간은 뮤지션이 지나가는 브릿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나는 롤링홀 같은 소극장은 뮤지션이 거쳐 가는 곳이지 여기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뮤지션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계속 음악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그렇게 해서 성장한 뮤지션이 가끔 여기 무대에 서 주면 그걸로 좋다.

기획 공연에 대한 대표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감각이 좋아야 한다. 음악도 많이 들어야 하고. 요즘은 젊은 기획팀 직원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 예전에는 내가 뮤지션 선정에 관여를 많이 했다면 요즘은 기획팀에서 추천을 받아서 할 때가 많다. 팀원들이 다 모니터해서 “이 친구 잘될 것 같습니다” 하고 보내준 거니까 그중에서 선택한다. 그런 아티스트 중에 눈에 확 띄는 친구가 있으면 “연말까지 공연 잡자, 나 이 친구 자신 있어”하고 진행하기도 한다. 그런 아티스트 중에 처음에는 한두 명 공연에 오지만 나중에 다 매진시킨 사례도 많다.

홍대 인디 1세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은 언제인가?

인디 신의 중흥기는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때가 1차 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에 홍대에 댄스 클럽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원래 홍대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는데, 댄스 클럽들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공연장들이 많이 밀렸다. 그런 분위기를 우리 쪽으로 다시 바꿔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그러던 중에 한 인디 밴드가 방송에 나와서 사고를 치면서 홍대 소극장이 폭탄을 맞은 것 같은 상황도 벌어졌었다. 그 여파가 몇 년 동안 이어졌는데 그때도 좀 힘든 시기였다. 요즘 상황이 그래서인지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이 떠오른다.

외부 요인으로 위기가 왔을 때 그걸 이겨내는 대표님만의 방법이 있을까?

그럴 때마다 인터뷰를 자주 했던 것 같다. 이번 코로나 때도 인터뷰를 진짜 많이 했다. 누군가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 얘기를 들어주지 않으니까. 지난 1년 동안도 그랬다. 코로나 터지고 처음 1년 동안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인디 신에서도 다들 누군가 하겠지,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방관했던 것 같다. 그러다 작년 연초에 공연장들이 계속 문을 닫는 일이 생기니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게 계기가 돼서 공연장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그때 마침 우무지 페스티벌이 열리면서 뉴스가 확산되었다.

우무지 페스티벌이 위기를 견뎌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나?

우무지 페스티벌이 열렸을 때가 사실 나도 공연업을 그만두려고 하고 있었다. 금전적인 어려움보다도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정부건 시민들이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현실이 심적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일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우무지 페스티벌이 열리면서 많은 뮤지션들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인디 신에서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서 페스티벌을 같이 해내고, 그러면서 언론에서도 우리 현실에 관심을 가져주니까, 그러면 우리도 조금만 더 버텨서 힘을 내보자,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

우무지의 성공 사례처럼 이제 인디 신에도 하나의 조직으로서 구심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그동안 보이지 않게 내가 너무 종종 관여했던 것 같은데, 내 역할을 거기까지인 것 같다. 내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담을 젊은 친구들에게 전해줘서 그들이 중심이 돼서 이끌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공연장 운영에서 요즘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

뮤지션들이 떠나는 것이 고민이다. 신인들이 공연장에서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이제 유튜브에서 활동한다. 예전에는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하면서 처음에는 10석, 50석 이렇게 채우다가 200석, 매진 이렇게 성장해왔는데 이제 코로나 때문에 어차피 공연은 못 하니까 유튜브 활동에 집중하게 되는 거다. 개인적으로 그게 과연 뮤지션을 위해서도 맞는가라는 생각은 들지만 한편으로 이들을 어떻게 다시 공연장으로 불러 오느냐가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롤링홀을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3~4년 전 얘기인데, 오래전에 매번 교복 차림으로 공연장에 왔던 친구가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 두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공연장에 왔다. 나는 당연히 못 알아봤는데, 그 친구가 인사를 건네며 여기에 꼭 남편이랑 와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뭔가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추억을 주는 사람이구나, 이 공연장이 사람들한테 이런 장소였구나, 새삼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이 공연장은 각자의 추억이 남아 있는 특별한 장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라면.

내가 남들한테 추억을 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하다. 그리고 형, 동생 사이로 지내는 뮤지션들이 성장하는 거, 잘 되는 거 보면 그것만큼 행복한 게 없다. 아무도 몰랐던 뮤지션을 우리가 알아보고 기회를 줘서 나중에 그 아티스트가 1등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이제 롤링홀은 홍대 인디 신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서 부담감이 크다. 연말이면 내년 1년은 또 어떻게 극장을 유지할지, 어떻게 극장을 다시 활성화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마니아들 외에 우리 극장에 한 번도 오지 않은 관객들을 어떻게 불러올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더 하게 된다.

롤링홀은 대표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내 청춘을 다 바친 공간이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하는 일이지만 어떨 때는 그게 너무 싫다. 아마 그게 정답이지 않을까.

김현성 에디터

* 2021년 12월 28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