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질서 그 후... - 대체 미술관을 통해 오픈 액세스의 의미를 묻다.

대체 미술관을 통해 오픈 액세스의 의미를 묻다.
새로운 질서 그 후...


독특한 팀 이름이다. ‘새로운 질서 그 후...’(이하 ‘그 후’)는 무엇을 의미하나?

이지수: ‘새로운 질서’는 다섯 명의 팀원이 처음 만난 컴퓨터 언어 글쓰기 수업, 쉽게 말해 코딩 수업의 이름이다. 이 수업을 통해 컴퓨터 언어를 익히고 직접 써보며 웹(World Wide Web)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어보는 경험을 했다. 6주간의 수업을 마친 뒤, 단편적으로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웹을 둘러싼 환경에 관심을 가진 다섯 명이 모여 팀을 이루었다. ‘그 후…’라는 이름을 덧붙인 까닭이다. ‘새로운 질서 그 후….’는 웹의 기본 정신인 개방·공유·참여를 가치 있게 여기며 오늘날 웹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실천적 공동체다.

원래 어떤 일을 했나?

이지수: 순수 미술을 전공했다. 지금은 교육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윤충근: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 후의 웹사이트 역시 인상적이다. 최초의 웹사이트(info.cern.ch)를 오마주한 것인가?

윤충근: 그렇다. 최초의 웹사이트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웹사이트다. 1991년 영국 출신의 물리학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경이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접속할 수 있다. 이 웹사이트는 이미지 없이 텍스트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웹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문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후의 웹사이트 역시 이를 참조해 텍스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요소를 걷어낸 데에는 어떤 의도가 있나?

윤충근: 최근의 웹사이트는 대부분 디자인이 화려하거나 모션 또는 인터랙션 요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흰 배경색에 검은 글자로만 이루어진 최초의 웹사이트의 첫인상은 어딘가 어색하고 낯설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장식적인 시각 요소를 사용하지 않고 내용에만 온전히 집중한다는 점에서 그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팀 활동에 있어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삼고자 이 형식을 빌렸다.

그 후는 웹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탐구한다고 소개한다. 주로 어떤 현상에 관심을 두고 탐구하나?

이지수: 웹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에 관한 담론은 빠르게 바뀐다. 또한 팀이 주목하는 현상도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를 기록하고자 《무슨일선집》 시리즈를 창간했다. 《무슨일선집》은 웹을 둘러싼 동시대 해외 담론을 엮은 출판물이다. 창간호에는 웹의 기본 정신과 웹 접근성과 같은 윤리적 관점에서 선정한 여섯 편의 글을 담았다. 현재 준비 중인 2호는 사용자 자율성과 탈플랫폼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윤충근: 관심 분야는 유동적이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가치는 웹의 기본 정신이다. 2호에서 다룰 주제 역시 마찬가지다. 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 경은 소수의 플랫폼이 웹 생태계를 독점해 사용자가 자율성을 잃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권력을 가진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주체적 정보 습득을 제한한다. 개개인의 고유성은 플랫폼의 형식에 맞게 획일화된다. 팀 버너스 리 경은 웹이라는 발명품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거둘 수 있었음에도 특허를 주장하지 않고 무료로 대중에게 공개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온라인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말하고 참여하며 나눌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웹이 태어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그 정신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그 후가 운영하는 ‘대체 미술관’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대체 미술관이 소개하는 작품은 어떤 작품들인가?

이지수: 대체 미술관은 국내외 미술 기관이 제공하는 오픈 액세스 이미지를 대상으로 한다. 오픈 액세스 이미지를 제공하는 미술 기관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저작권 이용 및 표기에 관한 파악을 마친 개별 작품을 대체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삼는다. 이미지 제공 기관과 대체 미술관이 일종의 협력 관계가 되는 셈이다. 
 
대체 미술관의 이미지 큐레이션 기준이 궁금하다.

이지수: 흔히 ‘미술’하면 떠올리는 전통적인 회화 외에도 설치, 뉴미디어, 공예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선보이고자 한다. 또한 작가의 성별이나 인종, 국적 등 다양성을 고려한다. 물론 미술 기관에서 제공하는 오픈 액세스 이미지의 대부분이 20세기 이전 작품으로 여성이나 동양인, 흑인 작가의 비율이 현저히 낮다. 미술 기관의 오픈 액세스 이미지가 문화유산이라는 차원에서 미술관은 과연 어떤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대체 텍스트로 소개된 대체 미술관의 오픈 액세스 작품들 ⓒ새로운 질서 그 후...
원래의 작품 이미지 ⓒ새로운 질서 그 후...

대체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대체 텍스트는 어떻게 작성하는가?

이지수: 총 세 단계에 거쳐 작성한다. 먼저 팀원 각자가 이미지를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체 텍스트 초안을 작성한다. 다음으로 초안 작성자 이외의 인원이 이를 개별적으로 검토하고 의견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모든 인원이 함께하는 회의에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을 점검하고 최종안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발견하고 단어와 조사의 타당성을 검토한다. 최종 대체 텍스트가 나오기까지 실제로 수십 개의 문장을 작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경제적인 문장 구조를 도출해낸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에서 선보인 〈#국립대체미술관〉 작업이 많은 도움이 됐다. 7585개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이미지에 대한 대체 텍스트를 직접 작성하며 이미지 묘사 지침에 대한 리서치도 하고 매체 별 대체 텍스트 작성 훈련을 통해 현재의 작성 방식을 수립했다. 

좋은 대체 텍스트란 무엇인가?

윤충근: 좋은 이미지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이듯, 좋은 대체 텍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이미지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인식하는 범위가 다르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방식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인과 기관이 대체 텍스트 입력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절대적이고 완벽한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 수 있다. 이미지를 번역한다는 것이 애초에 절대적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각자의 관점이나 이미지의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작성 방식이 공존하는 편이 어쩌면 더 건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대체 텍스트를 작성할 때 도움이 되거나 참고할만한 자료로 쿠퍼 휴잇 디자인 박물관(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의 ‘이미지 묘사 지침(Cooper Hewitt Guidelines for Image Description)’을 소개한다. 이 지침은 쿠퍼 휴잇의 소장품을 사례로 이미지의 요소를 위치, 크기, 색상 등으로 구분해 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미지 묘사 지침의 내용이 굉장히 구체적이다.

윤충근: 지침의 첫 시작 부분에서는 캡션(Caption), 긴 설명(Long description)과 대체 텍스트를 구분해 설명한다. 캡션은 작품의 매체나 제작 연도 등의 정보를 포함하는 짧은 글이고, 긴 설명은 길이에 제한을 두지 않고 가능한 많은 시각 정보를 담는 글이다. 반면, 대체 텍스트는 적절한 글자 수 안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작품으로 묘사하는 글을 말한다. 또한, 지침 중에는 문장 구조에 대해 제언하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This is an image of~”와 같은 문구를 포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문구는 너무 당연해서 불필요할뿐더러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침 자체가 영어 문장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한국어 문법으로는 온전히 변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팀 내부에서는 이 지침을 기반으로 하되, 한국어 문법 구조에 보다 알맞은 지침을 수립했다. 

대체 텍스트가 사용자에게 실제로 어떻게 전달되는가?

윤충근: 대체 텍스트는 화면 낭독 프로그램을 통해 소리로 사용자에게 전달된다. 애플의 운영 체제에는 ‘보이스 오버’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손쉬운 사용’ 메뉴에서 사용할 수 있다. 윈도우 운영 체제에서는 ‘센스 리더’라는 유료 프로그램으로 활용해볼 수 있다. 청각을 사용하는 보조장치 외에도 텍스트를 촉각 언어인 점자로 변환해 출력하는 기기도 있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흔히 전맹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국내의 전맹 비율은 20퍼센트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시야의 일부가 보이지 않거나 색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 등이 있다. 따라서 더욱 다양한 보조 수단이 필요하다. 

대체 미술관이 강조하는 ‘오픈 액세스’는 복합적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윤충근: 오픈 액세스란 논문이나 기사, 이미지 등의 자료를 비용에 대한 제약 없이 누구나 연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 공유 체제이다. 매우 이상적인 듯하지만 여기에도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픈 액세스 자료를 정말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가? 오픈 액세스마저도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진 않은지를 대체 미술관을 통해 묻고자 했다.

웹의 기본 정신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과거 ICT 기술 발전은 탈권위를 불렀는데 지금의 기술 발전은 어디를 향하고 있다고 보나?

윤충근: 그 후의 관심은 NFT, 블록체인 등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또는 그 발전 방향성에 있지 않다. 오히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재고하고, 이것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자 한다.

이지수: 기술 전반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그 후는 기술 분야의 전선에 있지 않다. 그 후는 웹사이트를 예술 매체로 삼는 팀이다. 조각, 비디오, 퍼포먼스와 같은 매체처럼 웹사이트를 매체로 사용하는 것이다. 작업을 통해 웹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가깝다.

웹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윤충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이미지를 업로드할 때 대체 텍스트를 직접 입력할 수 있다. 트위터에서도 가능하다. 최근 트위터는 이미지를 업로드한 경우, 대체 텍스트를 입력 여부를 이미지 하단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왼쪽 하단에 ‘ALT’라 써진 작은 아이콘이 있다면 클릭해 확인해보라. 이외에도 웹사이트를 디자인하거나 구축할 때, 글씨 크기나 색상 값, HTML의 의미론적 사용 등이 접근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무슨일선집 1호》 에 소개한 스티븐 램버트의 글에 잘 나와 있다.

그 후의 그 후가 궁금하다. 향후 계획과 활동을 알려달라.

이지수: 대체 미술관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확장하고자 한다. 현재는 팀 차원에서 작품 이미지를 선정하고 대체 텍스트를 작성 및 업로드한다. 여기에 만약 각자의 의견을 남기거나 직접 이미지 또는 대체 텍스트를 업로드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대체 텍스트 사례와 관점을 확보하고 논의도 더 활발해지지 않을까. 오픈 액세스 이미지를 제공하는 미술 기관과 연계해 작업을 이어가는 방식도 상상해본다. 또한 대체 미술관이 선보이는 대체 텍스트를 보고, 작성 지침에 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따라서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대체텍스트워크숍〉(afterneworder.com/alttextworkshop)을 상시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개인이나 기관, 기업을 대상으로 신청받아 워크숍을 진행하려 한다. 

윤충근: 웹사이트는 끊임없이 업데이트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언제나 베타 버전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웹사이트의 어떤 시점을 기록해야 할지, 이를 어떤 방식으로 보관해야 할지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팀의 웹사이트(afterneworder.com)를 장기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 역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 후는 웹사이트를 매체로 작업할 뿐 아니라 이를 기록, 보관, 소장하는 방식에 관해서도 탐구하고자 한다.

이현구 에디터

* 2022년 6월 7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