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 - 지금 당장, 동물 해방

지금 당장, 동물 해방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

비거니즘이 트렌드라고 하지만 비거니즘에 대한 이해도는 낮다. 비건은 고기를 먹는 논비건이 불편하고 논비건은 고기를 안 먹는 비건이 불편하다. 가족들이 모여 같은 밥상을 나누는 명절, 비건과 논비건이 모두 행복할 순 없을까? 추석 특집 〈이렇게 맛있는 추석〉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논비건으로서 비건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비거니즘은 흔한 오해처럼 식탁 앞에서 부리는 유난이 아니었다. 삶의 중요한 가치를 지향하고자 하는 태도였다. 비거니즘이 지향하는 다양한 가치의 교차점엔 동물권이 있었다. 업으로써 삶으로써 동물권이란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가를 만났다. 비건을 트렌드로 비추는 시대, 그 뒤에 숨겨진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와 나눴다.
왜 지금 동물권인가.

비거니즘이 라이프스타일로 주목 받고 있다. 비거니즘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전략으로써는 고무적이고 효과적이다. 다만 비거니즘의 시작은 동물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이 동물권에 대한 이해로 확장돼야 한다.

언제 동물권을 접했나.

원래 동물을 좋아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지방에 있는 열악한 동물원에 가서 홀로 갇혀 있던 호랑이를 본 경험이 강하게 남았다. 동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종차별주의라는 개념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은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동물에게 이익이 되는 일로써 선택한 게 동물 해방 운동인 건가.

외국에서 환경지리학 생물다양성 보전 석사 과정을 공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운동가가 될 거라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이건 동물을 살리기 위한 학문이고 결국 누군가 실천해야만 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지금 당장’이라는 기치가 중요했다. 자연스럽게 운동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국내 동물보호단체, 환경단체에 있다가 2017년 동물해방물결을 발족했다.

우리나라에서 동물권을 의제화하는 것부터 난관이었을 것 같다.

2017년 동해물 발족 당시는 동물권보다는 동물복지를 더 많이 말하던 시절이다. 2~3년 새 변화가 생겼다. 지금은 정치권이나 출판물 등에서 동물권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인다.

동물복지와 동물권의 차이가 무엇인가.

동물복지는 동물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목적을 가지지만 동물 이용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통상 구분한다. 반면 동물권은 모든 동물에 대한 이용 및 착취를 반대하는 철학이다. 모두 동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데, 한쪽은 이용해도 된다고 하고 한쪽은 안 된다고 하면서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결국 가고자 하는 길은 같다. 동물의 고통을 완전 경감할 수 있다면 이용과 착취가 없을 테고, 그게 동물권 보장이다. 동물을 위해서 뭉쳐야 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2021.07.09 식용 개 도살 및 매매 실태 조사 보고서 <‘반려동물’? 대한민국 개들은 이렇게 도살된다> 발표와 함께 조사 대상이 된 여주 계신리 불법 개 도살장 급습 현장 당시
동물해방물결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모든 동물이 착취·학대·살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행동한다. 동물해방, 비거니즘 확산, 종차별 철폐라는 세 가지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는 대중 집회 등을 연다.

개 식용 반대에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다.

다른 나라는 펫샵, 반려견 학대 및 방치 반대운동만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개 식용이 산업적으로 존재한다. 오로지 먹기 위한 개를 번식하고 경매하고 도살하고 유통하는 시스템이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개를 공존해야 하는 동물로 보는 사회적 공감대는 높다. 개 식용에 대한 논의를 끝내지 않으면 소, 돼지, 닭 등 다른 식용 동물에 대한 논의도 늦어질 거란 생각이다.

개 식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다음 단계는 펫샵 반대운동인가.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이면엔 쉽게 사고 키우고 버리는 문화, 그리고 번식 생산업이 있다. 추정치지만 지금 반려 목적으로 번식된 개가 250만 명, 식용 목적은 100만 명이다. 1년에만 350만 명이다. 번식된 개들의 여생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당장 반려동물 인구가 줄어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펫샵 분양이 아닌 입양 문화가 생겨야 한다. 각종 영역에서 동물을 소비하는 산업 자체를 축소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천 불법 농장에서 사육 중인 소들에 대한 구조 및 모금 활동을 진행할 당시, 농장에서 소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
도살장으로 가는 소도 구출했다 들었다.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리에 소 보금자리(생추어리)를 만들고 있다. 작년 초 개농장 주인이 한켠에서 소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어미소들이 착유되려면 출산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태어난 소는 성별에 따라 착유소가 되거나 도축소가 된다. 시민모금으로 소 15명 중 6명을 구출했다. 6명은 인연이 닿은 작은 목장에 안전하게 머무르고 있고, 9명은 도살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만들고 있는 신월리 보금자리는 평생 머무를 수 있는 건가.

그렇다. 인제군 달 뜨는 마을 신월리와 함께 폐교 분지를 활용하여 소 보금자리를 조성 및 운영하자는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홀스타인 소의 평균 수명이 15~16년인데 업무 협약 효력은 30년이다. 10월 중으로 소들이 입주하면 넓은 풀밭에서 평생 자유롭게 지낼 것이다. 소 보금자리 옆에서 같이 살게 하는 등 동물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생추어리는 어떤 의미인가.

생추어리는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으며 동물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동물 해방에서 중요한 건 상생 모델이다. 지금 당장 동물 해방을 외치는데, 그렇다면 해방된 동물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지방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신월리도 생추어리로 인해 청년 인구 유입을 기대하고 있고 생추어리 수익 또한 마을과 나눌 것이다. 상생 모델이 성공을 거둬 다른 지자체의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

생추어리에선 소와 마을 주민이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건가.

지금의 도시엔 개와 고양이 외의 동물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농장과 도살장은 멀리 있다. 농장에서 학대 받는 개를, 자기 몸 하나 들어가는 케이지에 갇힌 닭을, 도살장으로 가는 소를 볼 수 없다. 무조건 만나야 한 명 한 명이 개별적 존재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만남이 정말 중요하다.
보금자리가 조성될 신월분교 전경
2020년엔 어류 동물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한 어류양식협회가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며 방어, 참돔을 바닥에 던지는 시위를 했다. 우리 단체가 동물을 정치적 의사표현의 도구로 사용한 학대라고 보고 고발했던 사건이다. 분명 보도 자료에 ‘어류 동물’이라고 썼는데, ‘물고기’로 기사가 났다. 이때의 경험으로 종차별적 언어 개선 캠페인을 시작했다.

어떤 내용인가.

물고기는 어류를 식재료로만 보는 인식이 담겼기 때문에 물살이로 대체해야 한다. 또 같은 뜻인데 인간과 동물을 구분지어 활용하는 단어들이 있다. 명과 마리, 사망과 폐사다. 명과 사망으로 통일해서 써야 한다. 동물권의 핵심은 동물-인간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종차별 반대운동, 여성해방운동 이후 ‘우리’라고 하는 단어의 범주는 계속 확장되어 왔다. 이제 ‘우리’에 비인간 동물도 포함해야 한다.

종차별 철폐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설득법이 주로 쓰인다. 일각에선 이 또한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못 벗어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일단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설득하려면 이 사람이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당신이 먹는 고기는 감금과 밀집 사육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윤리적인 주장만으로 상대의 인식이나 행동을 바꾸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코로나19라는 인수공통감염병의 근간에는 동물 착취가 있고 동물 착취의 근간에는 종차별주의가 있고 그게 결국 인간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말이 훨씬 유효하다. 이런 맥락이 없이 그 자체가 인간중심적이라는 지적은 오히려 실용주의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2022 서울 동물권행진의 슬로건도 ‘우리 함께 살자’였다.

동물해방물결이 주요하게 전달하는 메시지 중 비거니즘 확산도 있다. 비건에 대한 현 사회의 시각 어떻게 생각하나.

동물해방물결을 발족할 때, 비거니즘이란 단어가 생소해서 ‘완전 채식주의’라고 번역해서 썼다. 불과 몇 년만에 비건을 트렌드로 주목할 만큼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영국 비건 소사이어티는 40년대에 생겼다. 우리나라의 짧은 동물권 역사에 비해 비건에 대한 관심이 빠른 속도로 증가한 건 긍정적이다. 다만 트렌드 따라가기에 급급해 주객전도 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 기업들이 비거니즘 제품을 출시하면서 논비건적인 문구를 쓰는 등이다. 전체를 봐야  한다.

우리나라 전체로 봤을 때, 비건 커뮤니티가 서울 중심적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비건 식당과 커뮤니티 접근성에 있어 지역적 불평등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여느 문화가 그렇듯 대도시에서 자리 잡기 시작하면 영향력은 자연스레 커진다. 비거니즘을 새로운 트렌드로만 바라본다면 서울중심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사실 그렇지도 않다. 생추어리 건설 문제로 인제 신월리를 자주 방문하는데, 마을 분들이 기본적으로 육식을 많이 하지 않는다. 비건 불모지에서도 마을 분들과 일하고 밥 먹고 생활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시각을 바꾸면 원래의 생활 양식으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비건 운동가는 인지 부조화 때문에 번아웃 위험이 크다고 한다. 어떻게 관리하나.

인지 부조화를 빠르게 인정하는 편이다. 지나친 완벽주의는 모든 일에 해가 된다고 하지 않나. 사회 운동도 마찬가지다. 동물해방 운동도 비거니즘 운동도 일단 내가 살아야 할 수 있다. 에너지가 넘쳤을 때 일도 잘 된다.

동물해방물결 대표이자 동물해방 운동가로 보낸 6년 동안, 변한 게 있다면?

어느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보다, 함께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집중하게 됐다. 초기엔 주류 언론의 보도를 제1의 기준으로 삼았다. 기사가 많이 나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2022 서울 동물권행진을 하며 사람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외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봤다. 생추어리 이슈와 겹쳐서 언론 보도가 적었는데, 그건 생각도 안 났다. 요즘 화두는 행복이다. 활동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을 나누고, 그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2022 서울 동물권행진에서 마이크를 쥔 이지연 대표
정원진 에디터

* 2022년 9월 13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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