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재 건축가 - 버려지는 땅 위 극한의 건물들

버려지는 땅 위 극한의 건물들

신민재 건축가
 
길을 걷다 극한의 건물을 마주칠 때가 있다. 가파른 경사 위 얄쌍한 건물, 철거 과정에서 반쪽만 남은 세모난 건물. 그러나 자투리 땅은 잘못이 없다. 땅과 건축의 가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며, 관점을 만드는 것은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의 몫이다. 우리는 왜, 언제부터 특정 조건의 땅을 ‘좋은 땅’으로 규정하기 시작했을까? 얇은 땅 건축을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신민재 건축가를 만났다.
‘뜨아’는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조각난 땅들에 주목한 프로젝트다. 어떻게 시작했나?

나는 건축가다. 평소에 길을 다니며 없어지지 않고 응급 처치해서 살아남은 땅들을 유심히 본다. 하루는 잘 모르는 지역에 출장을 갔을 때, 좁은 땅 위로 누가 봐도 짓기 어려운 조건의 건물을 목격했다. 은둔의 고수를 만난 기분에 ‘뜨아’, 라는 감탄사가 자동으로 터졌다. 독특한 외형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공유했더니 사람들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는지 반응이 뜨거웠다. 이후 극한의 건물들을 발견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소개했고, “언제, 어쩌다, 누가, 왜 그렇게?”라는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의 시리즈물처럼 연재를 이어 갔다.

다음 행선지를 정하는 과정이 즐거웠겠다.

사실 뜨아 프로젝트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에게 제보를 받아 답사지를 정했다. 처음 게시물을 올린 뒤로 “비슷한 건물을 봤다”며 많은 분들이 사진과 주소를 제보해 줬다. 보통 건축가라고 하면 “이게 좋은 건축이다”와 같이 이상향을 제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건축가에게 기대하는 모습도 보통은 그렇다. 그런데 내가 내 건물을 설명할 때보다, 뜨아 프로젝트가 많은 분들의 흥미나 공감을 얻는 게 신기했다. 아마 잘 완성된 건축을 멋진 용어로 해설하는 것보다, 누구나 거리를 걷다 마주칠 수 있는 도심 속 건물들을 다룬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듯하다.

아무래도 건축가의 입장에선 그 건물을 만든 사람의 입장에 많이 공감했겠다. 극한의 조건 속에서 탄생한 건물들 아닌가.

율곡로 225 양평해장국 건물의 경우 모서리가 매우 뾰족한 곡면이다. 건물이 지어진 시점은 곡면 유리가 상용화되지 않던 시대인데, 벽은 곡선으로 마감하되 유리를 꺾듯이 연출하려면 어떻게 했을까? 여러 장을 얇게 이어 붙인 유리창에 잠 못 이룬 건축가의 고민이 녹아 있더라. 또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아무래도 건축을 전공한 사람으로선 땅의 맥락을 읽는 눈이 장점으로 작용한 듯하다. 같은 토지 문서를 보더라도 이 정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교적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같은 문서를 보더라도 다르게 읽는 눈. 예컨대 어떤 것인가?

어떤 경우는 한 부지에 건축물이 올라가기까지 4년이 걸렸다. 이 말을 들으면 건축가는 바로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 건축 허가를 받으면 2년 안에 착공 신고를 해야하는데, 미루고 미뤄 2년째에 착공 신고를 한 뒤 그 뒤로도 2년씩이나 건물을 안 올린 것이다. 왜일까? 효율이 적은 땅이거나, 준공 비용이 너무 비싸 건물을 지을 생각이 없어 마지막 순간까지 미룬 것이다. 또 많은 건물들은 도시 개발 과정에서 조각 케이크처럼 잘려 나간다. 배경 지식이 없다면 왜 개발 당시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일부만 잘랐는지, 혹은 건물을 자른다는 개념이 가능한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처럼 기록물의 행간을 읽는 노하우가 건축가로서의 이점이긴 했다.
은평로 85. ⓒ신민재
은평로 85와 같이 얇은 땅 건축이 오히려 인기를 얻기도 한다. 뾰족한 건물의 장점은 무엇일까?

인지도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심미적인 효과 때문이다. 크기가 커서 눈에 띄는 것보다도 특별하다. 얇고 긴 모양의 뉴욕 타임스퀘어 건물 사면 중 좁은 면의 광고판이 제일 비싸다. 사람의 이목을 끌기 좋은 덕이다. 또 잠원동 ‘얇디얇은 집’은 옆으로 긴 형태다. 일반적인 형태의 도톰한 집보다도 창문을 낼 수 있는 면이 넓다. 그러나 모든 땅엔 장단이 있다는 점은 덧붙이고 싶다. 건축가 입장에선 얇은 땅이 면적 활용 면에서 불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그 건물에서 생활할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야 한다.

한편으론 작은 땅에 건물을 짓는다는 게 상업적인 욕심처럼 보인다. 그 좁은 땅에 꼭 건물을 세워야 할까.

상업적으로 메리트가 있는 지역이면 당연히 욕심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공간이다. 전원처럼 ‘이곳에 내 영역을 확보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적절치 않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면하는 가로는 여러 구역으로 쪼개어 이용도를 높였다. 건물을 높게 짓기도 하고, 하나 지을 것을 쪼개어 두 세개로 지었다. 그렇게 하면 콘텐츠가 많아지고 사람들도 열 배 스무 배, 백 배까지 많이 찾아온다.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 명동이 그렇다. 수요가 높은 공간은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도시의 숙명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잠원동 ‘얇디얇은 집’. ⓒ이한울
직접 설계한 잠원동 ‘얇디얇은 집’은 최소 폭 1.4미터로 매우 실험적이다.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

비슷한 사례가 많지 않아 어려움이 예상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땅에 꼭 맞는 집을 설계한다는 건 특별한 기회이기도 했다. 단 한 명을 위한 웨딩드레스를 제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걸까 싶었다.

건축가로서 부담과 리스크가 컸을 것 같은데, 설계를 받아들인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도시의 조각 땅들이 버려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요리를 할 때 보기 좋게 만드는 데 필요한 부분의 재료가 있는 반면, 맛과 영양 면에선 똑같은데 보기에 좋지 않아 버려지는 부분도 있다. 버려지는 부분도 잘 섭취하면 좋겠는데 이건 땅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구의 자원은 원하는 부분만 사용하기엔 한정적이다. 특히 도심은 세금으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지역인 만큼 더 잘 이용해야 한다. 또 버려진 땅이 있으면 쓰레기가 버려지고 유동 인구가 감소하는 등 그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도시 외곽에 새로운 대규모 개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도심 속 땅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으로서, 차마 “그 땅은 좁으니 집을 짓지 마시라” 할 수는 없었다.

전례가 없는 만큼 무엇을 중점에 두고 지었을지 궁금하다.

‘이곳에 사람이 잘 살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건축가로서 건물은 지어드릴 수야 있지만 이곳에 살아갈 사람이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내 생활 습관을 미뤄봤을 때 나라는 사람이 살긴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의뢰인을 불러, 도면상 가장 좁은 부분과 똑같은 크기의 테이프를 바닥에 붙여 보여 드리며 괜찮을지 여쭸다. 괜찮다고 하시더라. 원하는 것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말했지만, 그것도 괜찮다 하셨다. 그렇게 공사에 돌입했다.

땅은 누가 소유하느냐에 따라서도 그 가치가 달라지는 듯하다.

땅을 소유한 사람의 철학이 더욱 명확히 드러나는 게 자투리 땅이다. 최근에 폐가로 버려진 지 4~5년쯤 된 성북동 한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자동차도 진입이 불가하고 땅도 좁은 데다, 큰 예산을 들일 수 없는 건이었다. 유리한 조건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땅이 방치될 경우 성북동에 마이너스고, 종로구에 마이너스고, 돌고 돌아 서울 시민인 나에게까지 마이너스라고 생각해 의뢰를 받아들였다. 이처럼 소유주의 의지만으로 조각난 땅을 개발하는 것은 어렵다. 땅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는 건축가의 안목과 그걸 바라보는 시민의 관심, 무엇보다 버려진 땅에 숨을 불어넣을 도시 정책가의 의지가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 자투리 땅은 종종 무가치하게 여겨진다. 많은 영역에서 가치 판단의 속도가 빠른 한국 사회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서울은 개발 속도가 워낙 빨랐던 탓 아닐까. 사실 땅은 잘못이 없다. 모든 사람에게 좋을 수는 없을 뿐이다. 정상의 범주에서 먼 땅이라도,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과 만나기만 한다면 너무나 특별한 땅이 된다. 영화 〈존 윅〉에 나오는 콘티넨탈 호텔은 뉴욕에 위치한 비버 빌딩이라는 삼각형 모양의 건물로, 뾰족한 모서리의 출입구로 주인공들이 들락거린다. 기능적으로 좋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그 건물만의 특성을 활용해 나름의 개성을 갖게 됐다. 조각난 땅을 볼품없는 땅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계를 매력으로 소화하는 건축 사례가 한국에도 많아지고 있는지?

조건과 상황을 잘 활용해 보려는 시도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태원 녹사평에 위치한 ‘Indian motorcycle’ 매장은 삼각형 모서리와 얇은 두께를 최대한 활용한 건물이다. 건물 중앙의 커다란 유리를 통해 뒤편의 하늘과 내부의 오토바이가 함께 보여 마치 액자 속 그림 같다. 다른 주인을 만났더라면 창고처럼 쓰였을 이 건물이, 주인의 철학과 연결돼 도심 속 멋진 경관을 만들어 냈다.
이태원 녹사평에 위치한 ‘Indian motorcycle’ 매장. ⓒ신민재
지금까지 정부에선 참 많은 도시 계획을 발표해 왔다. 엄청난 비용이 투입되고 기존의 도로가 깎여 나간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럼에도 도시 개발이 꼭 필요한 것인지 건축가로서의 시선이 궁금하다.

모든 개발이 과하다 생각하지도, 모든 보존이 훌륭하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땅의 어느 가치를 누르고 다른 가치를 덧대기 전에, 세대 간의 관계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진 그게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서울-경기권에서 내가 살던 동네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이건 나 개인의 얘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한 세대의 얘기다. 동네 몇 군데가 어쩌다 없어진 게 아니라 전부 사라진 것이다. 모든 것을 0으로 만들고 새로운 로테이션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라질 것과 생겨날 것의 관계를 고민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비전이다. ‘이런 도시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단기간에 되지 않는다. 정부의 임기도 있고 예산도 있는데 도시는 그 시간과 자원의 범위를 넘어선 사이클로 돌아간다. 1960년대 서울엔 느린 전차가 다니는 도로가 대부분이었지만 1970년대부터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는 차도가 늘기 시작했다. 차도를 확폭하는 계획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지속됐지만, 이제는 다시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를 늘리는 추세다. 시행착오를 피해갈 순 없으나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도시 개발의 핵심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도시 계획의 당위성이 정치적 논리 안에서 짜맞춰질 때가 많다는 것인데, 개인의 성향과 수요를 취합해 도시 계획에 반영할 수 있는 정책적 프로세스도 필요하다.

시민 개인의 관점도 중요하겠다.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도시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결국 시민의 정체성이다. 시민은 관점을 만들고, 도시 개발은 시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연착륙할 때 좋은 도시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에 대한 힌트는 공간 활용의 최전방, 조각난 땅 위의 건축들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정체성은 시민의 정체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내 정체성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신민재 건축가가 돌아본 이 도시(서울)의 정체성은 어떤 모습인가.

부유하는 유목민들의 도시다. 누구도 정착하지 않고 계속 이동한다. 보통 2년 단위로 계약이 만료되어 다른 공간으로 집을 옮기고, 그보다 짧은 주기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 집을 소유한 사람도 10년, 20년 뒤엔 또 다른 집을 사서 이사를 간다. 시민의 상당수가 늘 이사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이는 구입하는 물건이나 생활 습관에서도 드러난다. 좋다 나쁘다와는 별개로, 서울은 유목민들의 도시다.

‘뜨아’ 프로젝트를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 멋진 건축을 다룬 책은 많지만 터부시되는 땅을 다룬 책은 흔치 않은데, 출간까지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도시가 내 집은 아니어도 내 공간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건축가로서 전원 주택을 설계할 때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고려해 집을 짓는다. 대중교통이 없는 지역이면 주차장, 도서관이 없는 지역이면 서재를 함께 구상한다. 그런데 도시는 다르다. 내 집 바깥에서도 내가 소유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 도시 곳곳의 공간이 나의 정원, 나의 서재, 나의 응접실, 나의 음악실이다. 우리집에 어떤 가구를 두고 어떤 조명을 달지 고민하는 것처럼, 내 도시는 어떻게 생겼고 어떤 세월을 겪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결국 나는 이 도시의 긴 세월 중 어느 시점에 살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과 이 고민을 지속하고 싶다.

이다혜 에디터

* 2022년 11월 15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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